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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당의 문인화방

창현 박종회 화백의 積古(적고)

 

 

 

창현 선생께서 서한당에게 글 한 점을 통해 스승의 메세지를 전한다.

積古(적고) 

 

 

 

 

쌓을 적, 옛 고.

손수 쓴 글을 건네는 스승은 원거리 행보의 피곤으로 거슴츠레해진 눈,

무표정한 모습으로 별다른 말씀도 없었다.

그날 밤 서한당은 스승이 자신에게 내린 육필을 펴놓으며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일평생 남종화의 맥을 이으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화의 대가가

제자에게 남기는 징표에 무한한 존경과 고마움이 가슴에 파고 들었다.

 

 

창 밖에 한줄기 바람이 풍광을 때리며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기쁨과 감동의 이면에 감추어진 회포가

물에 풀리는 먹물처럼, 의식의 수면으로 가느다란 실타래처럼 흘러 나왔다.

 

일말의 불안감이 스쳐간다.

! 스승께서는 포항 화실을 왕림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어언 8년의 세월이 물처럼 흘렀구나.

도도한 세월의 흐름에 떠밀리듯 이어져 온 인연이었다.

덧없어라. 인연이 일어나고 스러지는 지난 8년이........

 

 

 

 

 

운향 선생과의 이별은 창현 선생과의 새로운 만남을 성사시킨다.

중환자실에서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면서도 그림에 대한 미련만은 버리지 못하고

일필하고 싶다.’ ‘화실 제자들을 못 챙겨 어떻게 하느냐.’

가느다란 음성으로 서한당의 손을 움켜쥐고 탄식하던 순간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런 애틋한 사연을 전해들은 창현 선생께서 마지막 병문안을 하면서

오갈데 없는 화실 제자들을 자신이 돌보겠다고 먼저 가는 제자에게 약속을 한 것이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었다.

 

운향선생은 정년 퇴직을 하자마자 화실을 개원하였고 제자인 서한당에게 차를 나누며

서화단의 동정과 창현 선생에 대한 존경심을 조곤조곤 들려주곤 했었다.

나이로 치면 당신보다 한 살이 아래였던 창현 선생을

大家의 권위와 당당한 위엄을 갖춘 선비 중의 선비라며

내면적 덕에 대한 흠모와 깊은 존경심에서 우러난

스승에 대한 예를 추호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포항의 언론사들은 운향 조우정 선생의 장례식을 보도하면서

포항 여성의 대모라고 극찬하며 추모했다.

포항여성회관 건립의 공과 소외 계층에게 법률 자문으로 

사랑을 실천한 여성으로 죽음을 추모했었다.

 

서한당이 회장 자격으로 추모사를 낭독하며 인간적인 슬픔과 상실감에 눈물을 삼켰다.

평소에 운향 선생의 애제자로 자칭하던 몇몇은 유효 기간이 死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윽고 운향조우정문인화연구실 간판이 내려지고 운현문인화연구실 간판을 달게 된다.

운향과 창현의각각 한 자를 集字집자한 것으로 창현 선생의 뜻이었다.

1회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을 지도하기 위해 서울에서 포항을 오가야했다.

 

창현선생의 문인화의 맥이 3대 째 이어진다.

그것도 비교적 문화적 불모지인 지방의 도시, 포항에서.

곧 이어 운향선생 1주기 추모전을 열어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을 잊지 않았다.

 

 

 

 

적고!

정수여골 精髓如骨이라더니, 단 두 글자로 필획을 최소한으로 절제함으로써

오히려 상징성을 더욱 응축시켜 寫意的 개념을 최대화 한다.

절제와 생략과 함축과 은유의 미학을 구사하는 이들에게

군더더기 같은 말은 침묵의 여백에 잠긴다.

 

큰 스님이 면벽참선하려는 제자에게 던지는 話頭화두처럼.....

                                    옛 것을 쌓으라는 것인데 ......

문인화의 본래적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라는 추상 같은 명령이다.

문인화는 조선의 문인, 선비와 같은 사대부들이 餘技로그리는 그림이다.

시대 변천으로 진정한 선비 정신을 갖추기도 어렵거니와

학문적 열망과 능력을 갖추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창현 선생은 늘 알아듣기 쉽게 넌지시 이르곤 한다.

‘00 女士!’라며 제자들을 女士, 즉 여자 선비라고 호칭하는 내심에는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정신적 사대부의 긍지와 자존심을 가지라는 것인데

이와 동시에 학문 특히 고전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이다.

 

 

창현 선생은 문인화라기 보다는 학문화라는 표현을 더 선호한다.

문인화의 특징을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라 한다.

그림에서 학문을 가까이 하는 선비의 품격이 풍기도록 고전 공부에 힘써야 하리라.

! 어렵고 어려운 길이지만

인격을 도야하는 길에는 지름길도, 끝이 없는 길인 것이다.

 

 

 

 

 

왜 창현선생께서는 에다 방점을 찍는가?

옛 것은 낡고 고리타분하고 시대 착오적인 폐단인가,

새로운 것만이 능사인가라는 회의적인 사고를 한 방에 깨부순다.

수많은 인류가 장구한 역사적 경험과 사유들을 토대로 쌓아 올린

 찬란한 문화의 바탕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되묻는다.

 

 

전통은 오늘을 있게 하고 미래를 창출하는 바탕이다.

전통을 거부하는 稚氣치기에 일침을 가한다.

은 점진적 노력의 뉘앙스를 풍긴다.

마치 농사를 지은 낱가리를 하나하나 쌓아 올리듯

옛 것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공부를 꾸준히 하라는 것이다.

 

 

 

積古라는 이 글의 아우라에는 繪事後素회사후소의 교훈이 담겨 있다.

창현 선생께서 서울에서 포항이란 원거리 출장 지도를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먼저 유명을 달리한 제자에 대한 인간적인 의리와 신뢰를 저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인전을 준비하는 중에도 한 번도 약속을 어김없이 천리길을 오간

한결같은 실천궁행 정신은 외유내강의 단면을 보여준다.

운향선생의 묘지도 여러 차례 참배하며 제자들에게 추모의 정이 식지 않도록 했다.

 

 

내면적 덕의 바탕 위에서 좋은 그림이 나온다.

지덕 합일을 중시하는 조선에서는 인간의 기본적 품성을 강조한다.

수묵화는 寫意的사의적이다. 그림을 그리되 형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그리는 것이다.

수묵화는 형이상학적 철학이나 인격을 요구하는 예술인만큼

선비나 승려와 같은 지식인층에게 애호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붓 끝의 기능만으로, 공모전에 입상 실적만으로

작가를 평가하는 작금의 사태는 한심하기 이를데 없다.

 

 

스승의 글귀를 이제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는 다짐을 하는 서한당이다.

 

(이슬 방울들은 '빛이 만드는 세상' 블로그에서 기증받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