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들이 포도(鋪道)에 융단처럼 켜켜이 쌓이고 나는 걸음을 멈춘다.
아직 발길에 밟히거나 채이지 않은, 방금 배달된 엽서.
소년 시절에는 그 엽서를 책 속에 끼워 두곤 했었지.
내가 또 하나의 나에게 보낸 순수와 연정의 엽서였었지.
부채꼴을 오려 샛노랗게 칠한 엽서는 백지다.
엽서를 오래 바라보면 몇 번을 쓰고 지운 것인지
그 흔적이 샛노란 색으로 덧칠되어 있다.
그래 그럴거야.
편지란 무수히 썼다가 지우는 것이지.
그 숱한 사연들마다 애타는 그리움과 아픔과 부끄러움으로 점철될 때마다
노란 물감으로 덧칠하였던 것이지.
가장 완전한 사랑은 말로 글로는 부족하다며
가장 순수한 마음은 결국 백지로 남는다며
받아야 할 주소와 이름조차 지워 버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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