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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할 미 꽃

 

영화를 피워 올렸던 제국의 기둥처럼

자식바라지에 지친 노모의 척추처럼

무게를 감당하느라 영광스럽게 휘어졌지만

아름다움도 부끄러움도 훌훌 벗어버린

백두옹의 산발은 마치 폐허의 성이 되었지만

꽃의 여로의 종점 이전엔

아름답고 당당한 숱한 이야기들이 있을거야

 

그래. 이른 봄 산책길에 만난 청순한 소녀,

새벽 이슬 촉촉한 입술로

허리 곧추세운 당당한 자태를 봐.

 

이 노옹이 양지바른 초원의 벤치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것을 보노라면

오로지 기다리고 그리워하기 위해 사는 그의 일편단심을 부러워하지

평생 뻥뚫린 마음에 무엇 하나 제대로 향할 게 없는 우리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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