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20대 초에 만나서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포항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다가
나는 9년 전에 조기 퇴직 후 시골로 오고 이제 자네는 정년 퇴직 후 서울로 갔구먼.
교단에 바친 정열에 경의를 표하며 새 생활에 잘 적응하기 바라네.
한 번은 자네가 도심의 귀갓길에서 내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지?
그 음성에서 고독이 배어있었다네.
그리고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나는 시골에서는 사흘도 버티기 어렵다.”
그런 말들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네.
우리가 포항이란 중소도시에서 살다가 나는 귀향을 하고 자네는 대도시로 이주를 했으니
이것도 인연이 가는대로 사는 것이지.
자네의 서울로의 이주나 나의 귀향은 일상의 엄청난 변화가 아닌가?
우리의 인생에서 몇 안되는 제2의 인생으로가는 삶의 반전이라네.
중년에서 노년의 길목으로
직업인에서 은퇴자로
시골로의 귀향이나 대도시로의 이주
우리의 선택과 운명이 함께 작용하는
생생한 삶의 한 마디!
소중하고 아름다워야 할 삶의 한 단면!
어이! 서울 사람이 된 K!
인간의 내면 세계에는 자신이 사는 공간의 흔적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하네.
공간의 지배력이란 자연적 공간만이 아니라 인위적 공간인 건축물도 포함될 것이며
시골과 도시라는 문화적 사회적 공간도 포함될 것이네.
포항의 어느 학교에서, 죽도 시장에서, 오거리에서, 어느 횟집에서
우리가 함께 했던 추억들은 내면에 공유한 흔적이었다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의 운명의 수레는
자네와 나를 매우 이질적인 두 곳으로 갈라 놓았네그려.
우수를 지난 꽃샘 추위가 간 밤에 하얀 눈을 흩뿌려 놓았군.
거무튀튀한 정원석 위에 쌓인 눈은 더욱 뽀얗다네.
남촌에는 매화가 눈을 떴다는 소식을 들은지 보름도 지났지만
이 뜰의 매화 눈두덩이는 아직 퍼렇게 얼어 있어.
바람기 많은 대숲은 정수리에 쌓인 잔설을 벌써 털어내내고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려는 것인지......
산골에 살아도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생활은 지루하여 견디기 어려운 것이지.
자칫하면 시골 생활이 타성과 안일의 늪에 빠질 수 있거든.
나는 기를 쓰듯이 어제와 다른 풍경을 찾아내려 한다네.
뜰이며 집 주변을 소요하며 밝은 눈으로 예리한 귀로 섬세한 촉수를 뻗으며......
나는 기를 쓰면서 어제와 무언가 다른 일상을 만들어 보려는 것이라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 먼저 변해야 하는 법이지. 마인드의 전환이랄까.
선인들의 발자취에서 지혜를 구하거나, 인문학에 대한 공부도 틈틈이 한다네.
그리고 명상하며 관조하며 세상에서 들려오는 시시콜콜한 소음과 망상을 버리려고 한다네.
인간은 외적 환경에 대해 끊임없이 자극과 반응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닌가?.
시골을 선택한 나는 지금 눈이 살포시 내린 오늘 아침의 풍경에서
예전과 다른 어떠한 미세한 <차이>를 찾아내려고 애쓴다네.
짐멜이란 학자는 인간은 차이를 본질로 하는 존재라고 하더구먼.
의식은 그때그때의 인상이 선행하는 인상과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하더군.
일반적인 도시 사람들은 나의 이런 독백을 사소한 일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기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네.
도시의 번화가의 현란한 풍경들, 도심의 화려한 아케이드, 질주하는 자동차의 경적,
수많은 사람들의 화려한 의상과 분주한 일상에 익숙한 도시 사람들이
이런 사소한 일에 눈길이나 관심이 미칠 리가 없지. 당연한 일이지.
얼마나 따분하고 지루해 하겠는가.
이 정적, 이 느슨함, 이 무료함에 숨이 막힐것일세.
도시는 현란한 차이의 공간이지.
그런 도시인들은 너무나 많은 현란한 자극에 대해 일일이 반응할 여유가 없는 것이지.
그랬다간 신경 과민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이지.
그래서 도시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과 말 따위에 가급적 냉담해지려고 하지.
긴장과 스트레스에서 내면적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한 자구책인 셈이지.
나 같은 시골 사람들은 매우 정서적이지.
자연과 인간에 대해, 그것이 매우 사소하고 작은 자극이라도 충분히 여유를 갖고 반응을 하거든.
반면에 도시인들은 정서적이 아닌, 지적 또는 지성적으로 반응을 한다네.
도시의 생활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현상들의 차이점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심한 스트레스에 내몰리지 않기 위해서 지성이라는 탁월한 내적인 힘을 필요로 한다네.
그런 지성은 어떤 외부의 충격이나 내적 동요도 따르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
그래서 도시인들은 남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거든.
남에게 일일이 간섭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거리두기는 개인주의로 나타난다네.
특히 서울과 같은 대도시인들에게는 더욱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지.
이런 현상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지.
즉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위협하는 외부환경의 흐름이나 모순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 심리적 기제로써 지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네.
이런 이런!
이 글을 쓰는 동안 백설로 흩뿌려지고 눈으로 채색된 풍경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네.
그러나 늘 바라보던 익숙한 풍경, 고정된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라는 인문학 교수의 권유를 떠올린다네.
그대의 건승을 바라며
덕유산지기 청곡 유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