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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창극 춘향실록 ( 춘향이 죽었다 ) 관람 후기 1

 

남원에 사는 동서(同壻)의 초청으로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에서

창극 춘향실록을 관람하게 되었다.

남원에서 거창까지 한 시간을 자동차로 달려왔지만 아직 깊은 감동의 여운이 생생하다.

 

창극의 마지막 장면은 더욱 강열하게 뇌리에 각인될 것이다.

춘향이 죽을 때 입었던 붉은 덧치마가 공중으로 거양되는 장면이다.

 

무대의 주된 배경인 광한루의 백설과 창극 단원들의 소복(素服)이 하얀색인데

폭이 넓고 긴 붉은 치마가 공중으로 거양되는 장면은 색의 대비를 이루는데

청순한 사랑, 정조, 절개를 상징하는 흰색과

사랑에의 정열, 권력과 권위에 저항하는 붉은 색의 강열함이 대비가 된다.

 

그리고 흰 눈이 내리던 이승의 사랑과

붉은 정조가 천상으로 승화되는 저승의 무변(無邊)한 사랑으로 대비가 된다.

 

 

 

 

 

 

로미오와 쥴리엣이 서양의 가장 대표적인 에로티시즘이라면

춘향전은 가장 한국적인 에로티시즘이다.

에로티시즘은 성적인 대상에 대한 강열한 열망을 일컫는다.

로미오와 쥴리엣도 이몽룡과 성춘향도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 속에서 피어난

독한 사랑

슬픈 사랑

죽음에 이르는 사랑이다.

 

원수처럼 지내는 두 집안에서 피어난 전자의 사랑

그리고 신분의 차이에서 피어난 후자의 사랑

모두 해서는 안 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극복하려는 애틋하고 광적인 사랑인 것이다.

 

에로티즘이 금지와 금기는 더욱 강열한 탐욕이 된다는

조르주 바타유의 기본 전제에 크게 공감을 하게 된다.

 

자신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선택한 가치를 신뢰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현실의 유혹과 권력의 억압에서도 꿋꿋했던 지조와 정절은

죽음마저도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에로티즘은 마약보다, 매독보다 집요하고 강열하여

죽음까지도 관통하다니 소름이 돋음을 어찌할 수 없다.

 

이 창극에서는 춘향이 지키려한 가치가 붉은 덧치마라는 상징으로 나타난다.

일편단심 즉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인 것이다.

다가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를 감동 시키는 것은 사랑을 위한 일편단심이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했던 러브스토리에

매료되며 그들을 영웅화하여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