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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왜 거창 스포츠파크에는 바위를 세 개씩 배치하였는가?(2)

바위 셋이 배치된 모양이 흥미롭다.

대체로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으로써 구도상으로도 좌우가 균형이 잡히고 조화로운 모양이다.

 

 

그렇구나. 저 배치는 우주를 상징하는 기호로구나!

높이 솟은 바위는 하늘의 상징이로구나.

천계(天界)! 내 안에도 하늘이 존재하는 것이지.

내가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천성 그리고 양심, 죄의식, 궁극적인 이상, ()이기도 하지.

 

 

낮으면서 평평한 바위는 지상의 상징이로구나.

지계(地界)! 그것은 현실이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 곡식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풍성한 땅,

그것은 지성이며 색()이지.

 

 

그리고 중간 높이로 두 바위의 중간에 위치한 것이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로구나.

인계(人界)!

천지만물을 이원적 구조로 바라보다가 사람이라는

자기의 존재를 자각한 것은 사고의 혁명적 전환인 것이지.

천지가 객체라면 사람은 주체가 되어 자기의 존재를 깨달은 것이지.

 

그래서 사람은 지상계에 발을 붙이고 현실을 살면서 불완전하고 미완의 삶을 

하늘을 우러러 보고 본받으려 노력하고

궁극적인 합일의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지.

 

 

 

숫자 3의 의미를 더욱 확장 시켜 보면

시작과 끝이라는 양자 개념에 추가된 중간이라는 개념으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 과거와 미래에 현재라는 개념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두 원인에 의한 생산물 즉 부모가 낳은 자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변증법의 논리에 의하면 정()과 반()이 낳은

새로운 명제인 합()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이렇게 오묘한 원리와 깊은 이치가 담겨 있을 줄이야!

나의 산책길은 어느 새 철학자의 길이 된다.

 

천지는 스스로 만물을 생육(生育)한다.

인간은 천지의 소산물이기 때문에 천지의 이치에 순응해야 한다.

즉 만물을 기르는 천지의 움직임에 스스로 동참해야 하는 것이다.

 

천지는 무한한 목적과 조화를 향해 가는 법칙성은 인간에게도 공통적인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조화되고 일체가 되는 세상이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이 이상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추구한 것이로구나.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고 하늘의 이치와 법도를 숭상하면서

유토피아를 만들어가려는 원대한 이상을 표현한 것이로구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