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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여백이 있는 삶

서양의 그림이 인간주의에 바탕을 두고 화려하고 다양한 색을 사용하여 자유롭고 풍성하게 표현을 한다면

동양의 그림은 자연주의에 바탕을 두고 최소한의 붓질로 점과 선의 본질을 표현하는 절제미를 추구한다.

그런 기법으로 감필법이란 것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래서 동양화에서는 여백의 미를 중시한다.

여백은 유교의 소(), 불교의 공(), 도교의 무()를 표현하는 것이다.

여백이 그냥 그리지 않은 빈 공간이 아니라 그림에 표현된 것보다 더 표현하고 싶은 것,

더 가치 있는 것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입으로 만들어내는 미사여구(美辭麗句)만이 아니다.

도심의 커피집에서 오가는 청춘들의 말은 아름답고 감미롭지만

말이 없어도 사랑은 호소력 있게 전해질 수 있다.

 

 

 

 

 

엷은 미소와 같은 표정, 깊은 호수 같은 동공에 고인

무언(無言)의 고백이 말보다도 더욱 진실하게 전해질 수 있다.

 

사랑해라고 하기보다 연인의 옷깃을 가다듬는 손길은 은은하다.

눈물을 글썽이며 머리를 쓰다듬거나 포옹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더욱 충만한 사랑이다.

 

 

사랑은 꼭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떠난 님을 그리워하며 기도하거나 편지를 쓰는 행위는 더욱 사랑을 깊게 한다.

 

 

 

 

 

 

이처럼

사랑에도 여백이 있어야 운치가 있고 진실하고 울림이 있다.

열 마디의 말보다 한 마디의 말이 더욱 정감이 있을 수 있다.

그 한 마디의 말보다 말없는 표정이 더욱 감동을 줄 수 있다.

심지어 보지 않아도 평생 동안 잊지 못할 행위가 있을 것이다.

 

 

 

 

말을 줄이고, 호사와 사치를 버리고, 복잡함을 버리고 분주함을 버리는 것이

삶의 여백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어렵고 공허하게 들릴지 몰라도 외화되고 물화된

자본주의의 아비투스에서 벗어나 초연한 지인처럼 살 수 있다면

깊은 울림과 아름다움의 극치가 아닐까?

 

 

세속잡사에 오염된 마음을 푸른 창공처럼 헹구어내기를......

마음이 텅 비어 무욕의 바람이 넘나들고

손길이 닿는대로 현이 울려 아름다운 음악이 되기를........

마치 동양화의 무한한 우주 공간처럼 무욕과 참 자유의 공간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