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에서 땔감으로 쓰기 위해 죽은 나뭇가지들을 추린다.
이 산이 늘 평화롭고 안정된 것만은 아니다.
여기도 인간 세상과 마찬가지로 경쟁이 심하고 생사의 흔적들이 역력하다.
이웃하고 있는 큰 나무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키를 키워 햇볕을 받아야 하며
이웃한 나무들과 때로는 상생과 공존으로 때로는 경쟁과 싸움의 흔적들이다.
자라지 못하고 어려서 죽은 나무며 태풍에 부러진 소나무 가지며 참나무 가지 등을
지게에 차곡차곡 쌓는 내가 어느새 초부의 티가 나서 기특하기도 하다.
지게에 제법 무겁게 꾸리고 어깨에 멜빵을 걸고 한쪽 무릎은 꿇는다.
짐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작대기로 균형을 잡으며 일어설 때는 긴장이 고조된다.
다리가 후덜덜 떨리는 게 역시 지게일은 고역임에 틀림없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내려오는 길에 선친의 모습이 불현 듯 떠올랐다.
아버지는 자신의 지게질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쏟아서 공부를 시켰다.
한 때는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임금 노동일을 하기도 하며
자식 공부뒷바라지에 온 힘을 쏟으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지게질을 하며 노동의 고역을 체감하는 것이다.
다만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의 기쁨을 맛보기 위한 것이다.
노동은 가장 낮고 천하게 대접받던 위치에서 삶의 중요한 위치로 찬란하게 부상한 것이다.
로크는 노동이 모든 재산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아담 스미스는 노동을 부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노동의 가치를 최고의 위치로 격상 시킨 이는 마르크스로서
그는 노동이 모든 생산의 근원이며 인간성 자체의 표현이라고 하여 노동 그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
무거운 짐을 진 지게의 두 다리가 땅에 착지하는 순간
노동의 고통은 뿌듯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벌써 산에서 져나른 땔감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육신을 강하게 하고 땀과 노역의 수고로 영혼을 살찌우는
이 겨울의 한 자락에서 초부는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