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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뚱딴지 같은 소리

뚱딴지를 캔다.

 

어제 비가 온 후라 뚱딴지를 캐는 밭이 온통 진구렁이지만 일이 즐겁다.

당뇨에 효험이 있다고 하니 꼭 필요한 이에게 캐서 주기도 하고

나도 웰빙식으로 갈아 먹을 수 있겠다 싶은 까닭이다.

 

 

 

질척거리는 밭에서 캐다 보니 울퉁불퉁한 틈마다 흙이 묻어있지만

이 겨울에 땅 속에서 자색의 먹거리가 나오다니 자연의 무한한 은혜에 감사한다.

한참 일에 열중하다 보니 일하는 재미에 빠져든다.

일 그 자체가 목적일 때 이런 재미가 찾아오는 법이겠지.

 

 

 

 

매끈한 몸매가 아니라 도깨비 방망이처럼 군데군데 혹을 붙인 터라

별로 좋은 음식 재료로 인정받지 못해 붙여진 이름이 돼지감자다.

게다가 뚱딴지란 완고하고 우둔하며 무뚝뚝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거나

행동이나 사고방식 따위가 너무 엉뚱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니 대접받지 못한 식물이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더니 이제는 제법 인기를 얻어가는 중이다.

 

 

 

뚱딴지를 수확하는 일이 이 겨울의 오늘 하루를 의미있게 만들어 준다.

이 일을 자본주의적 아비투스로 받아들이면 대체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지난 번 거창 시장에 보니 한 박스에 2만원인데 오늘 한 박스를 캐서 판다면 이 일의 가치는 2만원이 되겠구나.

그렇게 보자면 내가 하는 노동의 가치는 4만원어치의 가치보다 절반 밖에 되지 않는구나.

 

자본주의는 이렇게 세상의 수많은 일들이나 사물들의 가치를 단순하게 몇 원짜리냐로 평가를 한다.

읍내에 가면 갈비탕 두 그릇을 사 먹을 수 잇는 교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의 가치를 무례하게 몇 원짜리로 매김하는 자본주의적 아비투스에 찬동할 수가 없다.

이 순간에 나에게 노동의 가치와 즐거움을 일깨워 주고,

마음에 둔 누구를 위하는 사랑의 마음을 일깨워 주는

이 일의 가치를 돈 몇 품으로 매도 당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시장에 가면 내가 캔 것보다 씨알이 굵고 품질이 좋은 뚱딴지도 있겠지만

캐는 과정의 체험이나 줄거움이 담겨 있지는 않은 것이다.

 

뚱딴지라고 다 같은 뚱딴지가 아니다.

허허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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