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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세뱃돈에 대하여


오랫만에 만나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는 일을 기쁨, 자선으로 여기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일상적이고 익숙한 행위들에 색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가난하던 시절에 친척 어른이 꼬깃꼬깃 접은 돈 몇 품을 손에 쥐어주며

그렁그렁한 눈으로 베풀어 주던 애정을 어찌 내가 모르리오만.........


 


합리적인 소비 행위를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덥썩 쥐어주는 돈은 불순한 의도를 충동질하기 십상인 것이다.

주는 사람이야 선의의 베품이지만 합리적인 소비교육을 하는 부모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뱃돈의 의미가 변질되어 세뱃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가치 전도가 일어나기도 한다.

안주거나 못주는 사람의 입장이 난처하기도 하다.

마치 경쟁하듯이 세뱃돈이 갈수록 고액으로 치닫는다.

주는 사람의 형편을 어찌 아이들이 이해를 하리오?

아이들은 조건반사적으로 다음 해에도 당연히 돈을 받을 것을 기대한다.



 

화폐경제가 인간관계에 개입하면 묘한 현상이 일어난다.

할아버지가 준 1만원보다 삼촌이 준 2만원은 두 배의 가치로 평가된다.

할아버지의 사랑에 개입한 돈이 할아버지의 땀의 가치를 평가 절하한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이 그 점이다.


돈을 손쉽게 쥐어주는 행위는 정적인 사회에서는 미덕으로 간주되지만

합리주의적 사고로 보면 공짜돈, 행운으로 인식되기 쉽다.

정당한 노동의 가치도 아니다.


꼭 베풀고 싶으면 돈보다는 마음을 전하는 쪽지나 편지는 어떨까?

아이가 좋아하는 선물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떨까?

남이 준다고 우리 모두가 경쟁하듯이 주어야만 할까?



 

세뱃돈으로 횡재한 아이가 장난감 가게에 가서 산 물건은 쉽게 잊혀지고 버려진다.

왜 우리 사회는 조부모가 만들어 준 선물을 평생 간직하지 못하는지 아쉽다.

왜 어릴 적 조부모가 남긴 말 몇 마디를 평생 간직하지 못하고 살아가는지 아쉽다.



 


10년 만에 첫아들을 얻은 선친은 내게 차를 만들어 주었다.

바퀴 네 개를 둥글게 깎아서 만든 나무 자동차는 진짜배기 선물이었다.

지금은 없지만 그 자동차를 만들던 아버지의 정성과 기쁨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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