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우리는 고누(경상도 방언은 꼰)를 두었었다.
땅에다 판을 그려놓고 말을 움직여서 상대와 겨루는 일종의 진지놀이인 것이다.
우물고누, 줄고누, 호박고누,자동차고누 등이 있다는데 우리는 주로 호박고누 놀이를 하곤 했었다.
고누란 놀이는 머리를 써야 하는 전쟁놀이인 셈이다.
사람 대신 말을 이용하여 대리전을 하면서 승패를 겨루는 경기다.
노동의 고단함에서 육체적 휴식을 한다는 것은 해방이고 즐거움이다.
그런 휴식 중에서도 놀이는 한층 재미를 고조 시킨다.
놀이는 그 자체가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놀이는 참으로 인간적이고 인본적인 문화의 한 형태인 것이다.
그래서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이 예전의 사회에서는 딱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뒤엉켜 있다.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노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처럼 일의 능률을 극대화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일의 가치가
서로를 배려하면서 조화를 이루어 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김매기 모내기를 하면서 노래를 구성진 가락으로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던 기억들이 스쳐간다.
단원의 풍속화에 보면 나무를 짊어지고 내려오는 길에 쉼터에서 고누 놀이를 하는 그림이 눈길을 끈다.
생동감이 넘치는 것은 생생한 현장감이 그림에 잘 드러나는 점이다.
먼저 쉼터에 도착한 총각들 중에 누군가가 고누 한판 하자며 제안을 했을 것이다.
아마 무슨 내기가 걸렸을지도 모른다.
화면의 중앙에는 두 사람이 놀이에 열중하고 있고 두 사람은 판을 응시하며 훈수를 한다.
놀이의 삼매에 빠진 총각들의 재미있는 표정과 몰입하는 표정이 재미있다.
격식도 형식도 없는 순수한 놀이판이라 자세도 저마다 다르고 자유롭다.
땀내음이 물씬 풍겨온다. 거칠고 투박하며 원색적인 말투가 오가며 좌중의 흥미를 더해간다.
어른은 판에서 약간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유심히 바라보면서 젊은이들의 놀이를 흐뭇하게 지켜본다.
산에서 막 내려오며 쉼터에 도착하려는 총각은 곧 지게를 세우고 놀이판을 지켜볼 것이다.
마치 실제로 펼쳐지는 듯이 생생하여 즐거움을 준다.
서민들의 본바탕은 이렇게 소박하고 건강하다.
주어진 삶과 운명에 만족하면서 작은 즐거움을 찾아내는 심성은 착하고 순박한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림을 보면 마음이 한가해지고 넉넉해지는 것이 바로 이런 까닭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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