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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디지털 도어록에서 수동식 자물쇠로


현관문에 달린 디지털록을 교체했다.

이전에 부착했던 제품은 게***이라고 제법 소문난 제품이었는데 10년 동안 사용을 했으니 고장이 안날 도리가 없다.

디자인도 근사하고 온갖 기능을 갖추었는데 가격도 비싼 것이었다.

새 집을 지었다고 폼을 좀 재고 싶어 현관문을 고급스럽게 하라며 웃돈을 얹어주었더니 달아준 것이었다.




 

고장이 나서 연락을 했더니 오래된 제품이라 부속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안내 전화에 순간적으로 화를 냈지만 이내 수긍하고 만다.

한 제품을 오래도록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은 산업자본주의의 기본적 생리에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구성이 좋은 제품을 원하는 것은 나같이 순진한 소비자의 바램일 뿐인 것이다.

자본가들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이전의 제품을 빨리 폐기하도록 광고로 부추겨야 

이윤이 극대화 되는 원리를 알면서도 화를 낸 내가 어리석다.




 

기능이 업그레이드된 동일 회사의 제품을 구입하려면 수십 만원이란다.

나는 그 회사 제품이 아닌 값이 싼 수동식 잠금장치를 달아 달라고 하니 수리 기사가 눈이 둥그레진다.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되돌아가는 일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나는 도어록이 현관을 잠그면 된다는 본래적인 가치, 사용 가치로 되돌아 간 것이다.

시건 장치라는 본래의 목적에 적합하면 된다는 소신이 바뀐 것이다.

지금까지는 현관문에 비싸고 첨단 기능을 가진 제품을 달아서 폼을 재보려는 상징적 가치, 기호적 가치를 포기한 것이다.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만 사용한다는 것은 사실 현대의 소비사회에서 가능할까?

어지간한 개인적 주관이나 소신이 있다고 해도 사회의 풍조를 거스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소비사회에서는 생존에 꼭 필요한 것 이상을 생산한다. 낭비하고 소모하고 탕진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이 단순히 생존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사람답게, 진정으로 살기 위해서는

여유있는 소비, 초과 소비를 할 때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나는 이제 소책자 한 권이나 되는 이전 제품의 사용 설명서를 돋보기를 쓰고 찡그린 눈으로들여다 보지 않아도 된다.

암호를 바꿀 때, 지문을 인식할 때, 경보음이 울릴 때, 비상키를 사용할 때 수동으로 전환할 때 등의 복잡한 요령에서도 해방되었다.

쓸데없는 낭비를 통해 허영심을 충족하려는 욕구를 포기하기만 하면 이렇게 자유로운 것인데.......

 

그리고 신제품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 나다운 삶 즉 개성의 표출이 아니라는 점과

신분이나 지위가 상승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다시금 자신에게 타일러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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