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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당의 문인화방

운현화실에서


운현문인화연구실에 들른다

창현 박종회 선생을 사사하는 열댓 분의 화실이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문인화 수업일이다

스승과 제자들의 도제식 수업이 이루어진다

제자들은 저마다의 능력과 진도에 맞추어 과제를 수행한 후에

수업시 제출하여 평가와 보완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벽에는 많은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표구로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가는 과정중의 그림이다

 


나는 인문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저서의 주요 내용과 연계하여 사유한다

 

지금 한 화가가 흔히 남종화로 일컬어지는 자신의 문인화풍을 널리 퍼뜨리는 생생한 현장인 것이다

재미있게 표현하면 창현류의 화풍을 전수하는 도장인 셈이다

자신의 예술 세계의 골수와 같은 예술적 DNA를 전수시켜 

한국의 문인화단에 큰 족적을 남기려는 것이다

지금도 왕성한 체력과 열정으로 활동하는 현역 작가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인생의 황혼기에

제자 하나 하나가 유능한 문인화가로 성장하면서 결실을 맺기를 바라는 지극한 마음이리라


 

도킨스는 DNA가 자체적으로 지닌 모방과 복제라는 과정을 통해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여 생명의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충격적인 역발상을 내놓고 있다

즉 종이나 개체는 소멸하더라도 유전자는 모방과 복제를 통해 승계되고

이것이 자연의 선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생물학적 진화론이 사회문화적인 현상에도 적용된다고 하여

이를 밈(meme)이라는 용어로 설명을 한다

 

문하생들은 스승의 붓놀림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주시하며

스승의 주옥 같은 가르침과 평가를 새기며 스승의 정신세계와 화풍을 모방하고 재현하려 한다

창현선생은 십년이 넘도록 서울-포항을 오가며 고단한 말년의 여정을 지속하고 있다

쉽지 않은 문인화의 길을 선택하여 정진하는 제자들에 대한 인간적 유대와 애정이 그 바탕에 있었음을 잘 안다

 


벽면에 걸린 제자들의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매우 당연한 것이지만 스승의 화풍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창현사단이기도 하다

창묵회가라는 모임이 있는데 엄선된 제자들의 모임인 것이다

스승은 자신의 철학과 미의식과 화풍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 제자를 원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리고 제자들이 일취월장하며 우수한 화가로 성장하기를 학수고대한다

 

예술적 DNA를 물려주고 받으며 하나의 계보가 생겨난다.

계보마다 독특한 화풍을 가지고 화단에는 다양한 계보가 서로 경쟁하며 능력을 발휘할 때

문화 예술의 진보와 진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짐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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