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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도둑놈의 갈고리

 

밭 일을 하는 내 옷을 파고든 가시들!

아로니아 나무 사이에서 흐느적거리듯 자란 풀 하나,

꽃은 지고 이제는 오로지 번식의 과업으로 치열하다

 


도둑놈의 갈고리다

붙인 이름이 오죽했으면 도둑놈이라 했을까 공감 반 미안함 반이다

사람의 옷에 찰싹 달라붙어 갈고리를 채우듯 떨어지지않은 채

운명을 의탁하는 너는 도둑놈이라기보다는 난민이 옳겠구나 싶다

 


네 씨앗이 택한 전략은 기발한 상상이 진화의 과정에서 도입되어 성공한 사례가 되었구나

옷에 달라붙잘 떨어지지 않는 네 속성에 진덜머리가 난

사람의 푸념이나 화풀이 쯤이야 번식이란 절대절명의 사명에 비하면 무시해도 좋을 일이겠지

 

가늘고 길쭉한 씨앗에 갈고리를 달고 지나치는 행인의 옷에 찰싹 달라붙어

운명에 의탁하는 끈질긴 집념을 지녔구나

번식은 신성한 절대 사명이라며 올의 틈을 파고드는 손가락 끝은

갈고리로 진화하였구나

 


파도치는 갯바위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은 따개비처럼

어미 복부에 거꾸로 매달린 새끼 짐팬지처럼

난리통에 엄마 손을 꽉 잡은 어린이처럼

 

나는 난민 수송선이 되기로 한다

일을 끝내고 겉옷에 다닥다닥 붙은 난민들의 손아귀를 떼어놓는다

그들 중의 일부가 요행히 땅에 떨어질 것이고 좋은 조건을 만나 필생의 드림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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