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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벗,지인과 함께)

외현 장세훈 선생의 2월

 

외현선생의 글을 보노라면 마치 물이 흐르듯 막힘이 없고 유려하다

무욕의 선사가 소풍을 나온 듯이 여유롭고 꾸밈없는 소박한 마음이 배어나온다

고고한 선비가 선인의 뜻을 되새기며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자기 연찬의 모습을 연상한다

 

정월대보름을 연상했는지

초코렛보다 쑥국이라며 봄 향기 배인 2월의 달력을 만들었다

 

이번 달의 테마는 술이다

조선의 문인 송요화의 부인인 김호연재의 취작(醉作)이라는 시를

 한문과 한글로 병서한 작품이다

 

술은 사람을 취하게 하는 묘약이다

술은 맨 정신에서 벗어나 샛길로 이끄는 묘한 마력이 있다

소심한 청년이 사랑을 고백하게 하고 상사에게 호기를 내세워 직언을 하고

막혔던 아이디어가 툭 튀어나오게 하는 것도 술의 묘약이 주는 선물이다

술은 환각작용을 일으켜 기분이나 생각을 일시에 전환하기도 하고

한 쪽에 몰입케 하기도 한다

취기를 활용하여 평소의 사유나 감각에서 탈피하여

묘경에 이르거나 비의(秘意)를 얻는다면 매력적인 묘약이기도 하다



 


외현선생은 애주가다

그는 도처에 술잔을 기울이며 소통하는 서화가들이 많은 왕발이기도 하다

그는 적당히 취하면 붓을 드는 로맨틱한 취필을 즐긴다

문외한인 내가 목격한 사례 중에서 인상적인 이벤트가 여럿이다

 

서화가들의 주연이 무르익으면 전을 펼쳐 호방하고 쾌활하게 시연을 즐긴다

이런 취중 유희를 통해 예술의 일상화를 시도하며

작가들의 돈독한 관계와 창의와 경쟁을 은근히 즐기는 것이다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의 취작을 현실에서 보는듯 하여

내가 매료되었던 추억의 중심에 외현선생이 늘 있었다


 


글 속에는 취중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답답한 세상살이와 편협하고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리에 누워 즐거워하는 취중 낭만을 노래한다

 

술은 심리학적으로 도피의 기제를 통해 정신적 안정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호메오스타시스 (homeostasis)의 기능을 한다

술이 현실은 고통을 한 순간 잊게 해 주는 마취제로서만이 아니라

글과 글씨로 고통을 승화할 수 있다면 이미 술의 대가로 인정할 수 있겠다

 

 

(참고자료)

 

醉作 (취작 - 술에 취하여 짓다)

金浩然齋 (김호연재, (소대헌(小大軒) 송요화(宋堯和,1682~1764)의부인-女流詩人). 朝鮮 1681~1722)



醉後乾坤濶 (취후건곤활)

취하고 나니 천지가 넓고


(개심만사평)

마음을 여니 만사가 편하다


悄然臥席上 (초연와석상)

고요히 자리에 누웠노라니


唯樂暫忘情 (유락잠망정)

즐거움에 잠시 세상의 정을 잊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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