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털 같은 눈이 무수히 내리며 온 누리를 덮으려 한다
늘 눈 앞에 버티고 선 앞 산이 사라지고 도로가 묻여 자동차는 얼씬하지도 않고
길이 사라져 오갈데 없는 나는 토굴로 피신한 한 마리 짐승처럼 말뚱말뚱한 눈으로 눈 내리는 바깥을 바라본다
여기는 무인도
나는 이 섬에 상륙한 유일한 사람
문명의 세계에서 원시 자연으로 일탈한 사람
관계의 그물망에서 벗어나 고독의 창공을 유유히 날고 싶은 사람
삼라만상에 눈 가리고 오로지 참나를 찾으려 눈을 부릅 뜨는 선사 같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