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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장혼 선생과 나의 청복(淸福)

 

청복(맑은 복)이란 어휘는 자본주의 시대와는 코드가 잘 맞지 않는 듯 하다

그런데도 철 지난 이념을 향한 이끌림은 선비들의 고아한 정신세계에 대한 흠모의 정이다

 

나는 청복을 진정한 복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한 생활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데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저마다 다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한 삶, 가치있는 삶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우연히 청복이란 단어와 인연이 닿는다

조선 후기의 장 혼이라는 선비의 시 한 수가 나의 신념과 닿으니 기쁨이 솟아난다

시대를 건너 뛰어 교유하며 지조와 욕심없는 마음을 배운다

 

(창선 가마소)


인왕산 개울가에 열 칸짜리 집을 짓고 대나무와 국화를 가꾸며

은일하게 살아가는 선인의 삶터를 방문한다

시 한 수를 매개로 하는 상상의 방문이지만

친근함이 물씬 묻어나오는 것은 서로의 유사함 때문이고

 울림을 받는 것은 선비의 절제된 모습과 풍류 때문이다

 

선생은 청복의 조건을 제시한다

청복은 현재의 조건보다 더 바라지 말라고 한다

현실을 수용하고 만족하는 현실 긍정이 청복의 출발임을 분명히 한다

 

개울가에 집을 짓고 동쪽에는 대 숲이 있고

울타리 아래에는 은일화를 심고 가꾸며

자연에 동화된 삶에서 행복을 구한다

 

나도 그렇다

 

많은 나무와 꽃을 심고 가꾼다

집 뒤편엔 대숲, 뜰에는 꽃이 피고 지고 새가 울고 바람이 부니

이만하면 더 바랄 게 없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나아질 게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뜰이 이름 난 명소로 만들어보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이미 청복은 사라지는 것이리라

 

선생은 벗들과 교유하며 시를 짓고 읊는 

선비의 풍류를 낙으로 여기는 것을 청복으로 꼽는다


 


나도 그렇다

 

내가 한시를 짓고 읊지는 못하지만,

선비의 품격을 갖춘 친구들이 직접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사색하며 삶의 이야기를 많이 쓰고

블로그에 기록하고 품격있는 분들이 방문해 준다

 

선생은 번잡한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

오로지 자연을 벗삼아 은일허정한 삶에 만족하며 맑은 행복을 누린다

 

나도 그렇다

 

완전히 그렇지는 못해도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세상의 온갖 소식이며 소란이며 욕망의 유혹들이

문명의 이기를 타고 침투해 옴을 막을 수 없어

때로는 소란에 휩쓸리고 무너지기도 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러한 현실을 알고 유념하며 근신하려는 것이다

 


 (장혼 선생 문집)



<참고자료>


청복은 지금까지도 더하지 못하니

개울가에 열간의 집을 지킨다.

담장 동쪽의 평안죽을 자주 살피고

울타리 아래는 은일화를 많이 기른다.

높은 선비가 사는 곳은 어디나 즐거운 곳이요.

친구들이 시구는 스스로 명가를 이루었네.

산속에서 세상의 생각을 끊은 지 오래되어

아침 저녁의 풍광을 누구에게 자랑하리.

 

淸福于今莫爾加

十間方宅澗之涯

墻東頻訊平安竹

籬下多栽隱逸花

高士攸居皆樂地

故人詩句自名家

山中久斷紅塵想

日夕風光誰與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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