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원생활의 즐거움

뒷산에 오르며

 

뒷산에 오른다
산은 장마로 흠뻑 젖은 채 강풍에 부러진 가지와 뿌리를 드러낸 피해목이며

산돼지들이 파헤친 어수선하고 헝클어진 행색이다
말라서 죽은 어린 나무들은  산이 고요하고 단정하고 아름다운 곳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의 간섭에서 자유로워 본성대로 생장하지만 피할 수 없는 치열한 생존 경쟁이다
고요한듯 하지만 휘몰아치는 강풍과 생명체들의 신음과 비명이 혼재되어 있다

산은 대자연의 텍스트다
자연의 진리와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꿋꿋한 나무의 등을 어루 만지며 경배한다

온갖 풍상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썩배기 돌에게 무언의 미소를 품으며

비에 젖어 흙으로 돌아가는 낙엽의 향기를 느껴본다

젖은 땅에 군데군데  돋아나는 노오란 작은 꽃이 더러 눈에 띤다
외꽃버섯들이 비를 맞고 키를 쑥쑥 키우지만 길어야 손가락 정도 밖에 자라지 않으니 앙증스럽다
밤버섯들도 더러 눈에 띤다

산은 숱한 생명체들의 공동의 터전이다
먹이에 갈급한 돼지들이 파헤친 낙엽 흙더미에서 양식을 구하는 풍요의 터전이며

배부른 산새들의 노래는 요염하고 청아하다
어쩌다 산을 오르는 나에게 작은 선물 몇 줌 쥐어주며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전원생활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에 젖어도 향기 잃지 않고  (0) 2020.08.13
죽림의 느타리  (0) 2020.08.04
참나리의 개화  (0) 2020.07.30
거미  (0) 2020.07.28
빗소리 들으며  (0) 2020.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