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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교학상장

토란씨를 묻어두고 싹을 기다린다
올해는 좀 늦다 싶어서 안달이 난다
흙이 굳어서 그러려나 싶어 살짝 파보니 토란 정수리가 송곳처럼 뾰죽하다

밭을 어슬렁거리며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을 안하는 것도 아니다
노동과 유희 사이를 오가며 한가롭다
밭은 농산물을 생산하기도 하지만 여러 씨앗들이 발아하며 자라고 꽃을 피우는 생명의 땅이며 사람과 농작물이 상호작용을 하며 교감하는 만남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리고 밭은 내가 나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습의 현장이기도 하다

순간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이 떠오른다
나는 때때로 나를 가르친다 가르치는 직업으로 반평생을 살았지만 돌아보니 허사라 부끄럽기 짝이 없다
가르치던 고약한 버릇이 남아 있지만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 자신을 가르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학생이 된다
스스로 가르치고 배우는 사제동체요 1인 학교인 셈이다

나는 완전히 통합된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 안에 여러 타자가 존재한다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엄격한 원칙이나 지침을 전하는가 하면 때로는 다정한 친구처럼 호감으로 대하기도 한다
내가 묻고 내가 대답아기도 한다
독백을 하는듯 하지만 실은 내 안의 타자들이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때로는 서로 뜻이 달라서 분란과 충돌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당황스럽고 스스로를 혐오하기도 하고 도피하고 싶기도 하다
내 안의 여러 타자 중에 진정한 나를 확실하게 아는 것이 어렵고 혼란스럽다

그래서 나는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알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나는 미스터리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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