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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소리꾼 왕기석

왕기석의 사철가를 여러 번 들으며 뜰을 산책한다

사철가는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며 무정한 세월에 덧없는 삶을 한탄하는 노래다
이 가사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은 모든 인간의 숙명적 유한성 때문이다
그래 그래 나도 이제 낙목한천이 되어가는구나

남원의 국악원에서 두어 달에 한 번은 공연을 관람하는데 이 명창의 사철단가를 들은 적이 있다
공연 직전 복도에서 미소로 목례를 하는 따뜻한 심성을 보고 국악원장으로서가 아니라 소릿꾼으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언젠가 창현 선생의 개인전에서 식전 행사로 사철단가를 부르는 것을 보며 그의 팬이 되었다

그의 소리에서는 세상의 온갖 고초를 겪은 민중들의 즐풍목우의 한이 스며나온다
또한 소릿꾼의 흥을 청중들에게 전달하니 내 어깨가 들썩거리고 얼씨구나 좋다는 추임새가 나온다

소릿꾼은 민중들의 억압과 한을 풀어주는 주술사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스스로 고백하듯이 세상의 밑바닥에서 여러 잡역으로 생계를 도모하던 개인사가 청중들에게 공감대를 넓혀준다
소릿꾼 가계의 유전자를 받은데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국악계에 발탁되어 원장의 막중한 역할을 해냈으니 부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사철가는 야속한 세월에 슬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달관의 경지가 솟아나오며 지금 이 순간을 놀아보자는 반전의 미학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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