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물을 캐는 일이 소녀나 여인들의 일이라고 여기지만 그런 낡은 생각을 콧방귀로 날려보내는 이들은 동심을 즐기는 소년소녀들이다
함께 모여 신년맞이 모임을 하던 중에 옛 추억들이 쏟아져 나오고 누군가의 나물캐러 가자는 제의가 나온 것이다
일부는 시큰둥하여 야외 활동에 불참하지만 이런 신선한 욕망들의 행동화를 적극 지지하는 네 사람이 나선 것이다.
어디 보자!
어디로 가야하지?
이 고향 골짝의 전답들은 눈 감고도 훤한 친구가 앞서고 칼을 든 소녀와 호미와 바구니를 든 소년이 나선다 재잘거림과 가벼운 흥분이 뒤따른다
올해 땅을 뒤엎지 않은 묵은 밭에 가야 여러 나물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안다
한 친구는 예전의 추억들을 소환하는 밥수건쟁이(뽀리뱅이), 망태쟁이(광대나물), 내시래이(냉이),칼사래이(잎이 좁은 사래), 시칭구(지칭개)등의 나물을 토속용어로 소개하며 신명을 낸다
반세기가 더 지난 기억들이 꼬물꼬물 살아서 나오며 옛 풍경이 재현되고 죽은 엄마가 살아 돌아온다
나는 동향이면서도 낯선 이름이라 성인이 되어 알게 된 표준어와 결부하여 토속어를 짝짓기를 한다
여럿이 캔 나물이 적지 않다
각자 자기가 캔 것에 이름을 적으라는 익살이 오가며 제가 좋아하는만큼 제 능력껏 채집한 수확물이 함께 모아지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작은 것이지만 모두의 공유물이라는 점이다 이 놀이판에서는 사적 소유가 아닌 공동생산에 공동분배라는 유토피아 방식이 적용된다
이 자연스러운 모임은 원시공산사회와 빼닮은 원초적인 삶의 기쁨이 생겨난다
사유재산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욕망의 블랙홀이 돈이 아니던가!
이 로맨틱하고 성스러운 나들이의 체험 과정은 모두 무시하고 수확물을 얼마치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는 무자비한 평가는 실존의 많은 기쁨을 빼앗아 간다
이런저런 나물들을 깨끗이 씻고 다듬는 정성어린 손길들이며 오물조물 나물을 무치는 솜씨는 이 임시 공동체의 모성역을 기쁘게 자임하는 소녀들의 몫이다
머슴아들은 그런 정경을 바로보며 작은 심부름에도 잽싸게 행하는 착한 아이가 된다
마침내 상 위에 오르는 접시 둘, 한 쪽에는 밥수건쟁이와 망태쟁이들은 뒤섞은 나물무침인데 습쓰름한 맛이고 다른 한 쪽은 내시랭이 나물무침이다
나중에 된장찌개에는 내시랭이가 듬뿍 들어가 구수한 풍미를 돋운다
다른 반찬은 조연 배우에 불과할 뿐이라 오늘의 주연급은 단연 나물 무침이다
한 잔 먹세 한 잔을 먹세 소줏잔이 오가며 젓가락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나물무침이다
"이 나물 중국산이지?"
"그렇소 뒷산에서 방금 수입한 싱싱한 중국산이오"라며 흥겨운 대꾸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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