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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어느 고송 이야기

친구의 집에 일을 거들어 주다가 주택에 인접한 노송 한 그루에 대한 화제로 옮아간다
바위 틈에서 오랜 세월동안 자리를 지킨 고목인데 수령을 알 수 없지만 풍채도 거대하거니와 수형도 아름답다
요샛 사람들은 곧잘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적 타성에 물들어 있는데 나는 그런 것을 경계하고 혐오한다  
이 나무가 한 때는 마을의 수호목 대접을 받기도 했단다
그런데 문제는 소유주가 친구가 아니라 타인이라는 점이다

실망스럽게도 친구는 이 노송을 유해목으로 여기고 있다 솔잎이 지붕 위에 쌓이고 소유주와의 마찰로 노송의 존재마저 남의 물건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크다
절친이지만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 커다니........

아쉬워서 짧게 한 마디 거든다
저 노송이 누구의 것이냐를 떠나 그 혜택을 한껏 누릴 수 있으면 진정으로 내 것이 아닌가고....... 

친구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많은 생각이 스쳐온다
고송은 인간의 의도와 판단과는 전혀 무관한 독립적인 존재다 오랜 세월동안 이 자리에 정착하며 사철 푸른 빛을 잃지 않고 바람결에 솔향기 품어 흩날리게 했으며 인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몸에 신성한 줄을 두르며 합장을 하던 자랑스러운 내력을 가진 단 하나의 개체인 것이다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목적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노송을  조각조각으로 분할하는 것이다 소유의 문제 , 경제적 가치, 주관적 취미 등 매우 편협한 시각과 관점으로 사물의 존재의 연속성을 파괴한다
모든 사물을 인간의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이나 대상으로 삼아버리는 인간화된 질서가 정당화 되는 것이 폭력이고 그것이 무섭다
그리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위안과 신성함을 주는 고송에 눈 멀고 감동하는 마음을 잃어버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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