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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두꺼비의 축일

어둑하고 음습한 하늘 아래, 장마로 축축한 땅은 두꺼비의 길이다
동굴 속에 은신하며 태양과는 영원히 화해하지 않는 이 족속이다
두꺼비가 은신처에서 나와 천천히 걷고 있다
온 몸이 마르지 않게 끈적끈적한 바디 크림을 바르고 잠깐의 외출을 한다

얼마나 이 날을 기다린 것인가!
자신을 말려 죽이려는 태양의 열기를 피해, 그늘지고 습한 비밀의 아지트에서 꿈꾸던 이 외출은 이들의 축일이다
밭가에 출현한 두꺼비 한 마리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바라보며 사유한다

운명의 장난으로 하나이자 전체인 헨카이판에서 추방을 당한 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원래는 선과 악, 사랑과 증오, 밝음과 어둠, 뜨거움과 차가움, 마름과 습함으로 분열되고 분리된 세계가 아니었지


태양의 신 아폴론이 강의 신인 페네이오스의 딸인 아름다운 디프네를 사랑하게 된 것은 교만한 아폴론에게 복수하기 위한 에로스의 장난이었다
에로스가 쏜 화살은 두 종류였으니 황금화살은 사랑에, 납화살은 미움에 빠지게 되는 분리와 분열에 빠지게 된다
아폴론이 디프네를 무한히 사랑하지만 디프네는 그를 피하고 경멸하게 된다
사랑을 따돌리기 위해 강물의 신인 디프네의 아버지가 딸을 월계수로 만들어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디프네가 추한 몰골로 천천히 기동하며 햇빛이 사라진 이 날을 자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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