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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동래 한량 문장원의 입춤에 매료되다

 

오래 전부터 춤을 추고 싶다고, 배울만한 데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그 내면의 욕구의 발로인지, 말이 씨앗이 되어 내린 인연인지


진옥섭님의 '노름마치'란 책을 두 번씩이나 읽게 된다.


원체 전통음악에 대한 소양도 지식도 소질도 없는지라


용어에 대한 이해 정도의 기초 지식을 조금씩 얻는다.


 


이 시대의 마지막 한량으로 일컬어지는 입춤(立舞)의 名人


문장원님의 춤추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수십 번 보고 또 보면서


내 안에 있는 흥을 찾아내고 그 흥에 젖는다.

 

95세에 작고(2012)한 명인이 80대 후반이던 2002년에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초대 받고 춘  춤을 감상한다.

내 상상력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불꺼진 무대에 천천히 걸어 나오는 노인은 마치 암흑 천지의 여백에 노닐 白衣의 신선이 아닌가?


밝은 조명에 드러나는 푸른빛이 도는 흰 두루마기에 버선 차림으로 등장하는 명인을 보며


관객들은 허리를 곧추세우며 동공에 긴장감이 가득한 채 시선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지팡이에 몸을 의탁한 아흔을 바라보는 老軀로 춤을 춘다는 것만으로도


세간의 화젯거리가 되고 호기심이 생길 일이 아니던가?


입춤의 명인이자 동래 한량의 마지막 무대가 될지 모른다는 예감이 스쳐감은 당연한 일이다.


 


지팡이를 내려놓자 계면조의 시나위 가락이 잔물결처럼 흐른다.


명인은 저절로 눈이 감기며 깊은 숨을 들이쉬며 무아지경에 든다.


 명인은 자신이 무대에서 많은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현실을 금새 잊어 버리고


세상에 홀로 선 유일한 인간이자, 가장 원초적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양팔을 서서히 끌어 올리며 기운을 집중하며 氣門을 열어놓자


단전에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기운이 혈관에 퍼져 나가면서 


무릎이며 손가락 관절 마디 마디에 부드러운 윤활유가  배어나오는듯 했다.


 


이제 그는 유연하고 청정무구한 아기로 되돌아 가는듯했다.


 


 



 


 


그가 첫걸음을 뗀다. 마치 걸음마를 처음 시작하는 아이처럼 ......


가락에 따라 세월이 가고 걸음이 자라고 장성하며  늙어간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춤,  구십 평생을 통해  완성해 가야할 미완의 춤이던가?


 


시나위 가락의 拍은 그의 버선발을 따라 흐르고


선율은 그의 치렁치렁한 소맷자락에 너풀거린다.


명인은  가락이 흐르는 짧은 순간에도 젊은 날 춤을 가르치던


老妓의 환영이 스치며 온화한 어조로 가르치던 음성이 들리는듯 했다.


 


네 심장에서 치는 박자도 항상 고르지는 않는기라.


때로는 빠르고 격렬하게 고동을 치다가 때로는 여리고 유연해 지기도 하는기라.


네 발로 땅을 내디딜 때 장구나, 북이 네 발에 흘러야 하느니.


 


발걸음을 놓을 때마다 명심해야 하는기다.


둔하고 무거워서도 안되며, 경박하고 가벼워서도 안되는 기다.


발걸음 한 동작마다 의미를 담고 느낌이 다른 것이다.


최고의 춤꾼이 되려면 자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신선의 걸음을 배워야 한다.


영남의 춤판에서 누구도 밟은 적 없는 걸음을 익혀야 한다.


 


명인은  그 풀 수 없는 숙제에 막혀 오랜 고민을 해오다가


우연한 기회에 발목이 삐긋 접질러지며 땅바닥에 쓰러져 박자를 놓치고 말았다.


순간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은 바로 삐치기 직전까지 박자를 어긋내는 파격이었다.


짧은 박을 더욱 잘게 분할하여 최대한 정한 규칙에서 벗어나며


재미와 흥을 극대화 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자칫 부주의하게 되면 큰 실수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동작이라


정교하게 다듬기 위해 혼자서 오랜 연습이 필요했다.


 


스승의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씀이 이제야 이해되는듯 했다.


法古創新이란 말이여.


큰 법은 옛 것을 따르지만 고착화 되고 정형화된 형식에서 벗어나란 말이여.


사람이 살아가는데 도리가 있지만 모든 사람의 삶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일세.


 


 



 


 


시나위 가락을 따라 흐르고 걸으며 음악과 춤꾼이 일체동심이 되어간다.


한 때는 소리와 춤이 어긋나고 조화롭지 못해 다툼과 알력도 있었다.


소리들은 제각기 독특한 음색으로 저마다 개성과  자부심으로


다른 소리을 포용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해 못마땅해 한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명인은 발걸음이 삐치기 일쑤였고 잡념이 들어 동작이


끊기고 매끈함을 잃고 마는 경험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이번 시나위는


장구, 피리, 아쟁, 가야금, 해금, 대금으로 펼쳐지는 꿈의 시나위라고 했다.


각 기물마다 최고의 악사들이 연주한다는 말에 솔깃해지기도 했다.


  

선율은 두 팔로 받아야 하는기라.

소리의 높낮이가 길이나 흐름결과 어울려 나타나는 음의 흐름을 담아야 하는기다....

음악은 박자와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인간의 희노애락을 멋과 흥으로 펼쳐 내야 하는기라.

춤에도 생명이 있어 살아있는 춤을 추어야 하는기다.

춤판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인기라.

그 안에서 겪는 온갖 삶의 모습이 아름다운 율동과

신명나는 동작으로 보는 이들에게도 자신에게도 흥이 있어야재.

 


여리고 낮은 선율이 흐르면서 명인의 소맷자락이 서서히 움추리다가


빠르고 강한 선율이 흐르자 소맷자락이 돌연 확 돌아서듯 펼쳐지며


축 쳐진듯한 손가락이 일순간 무서운 힘으로  튕기며 허공의 벽을 밀쳐낸다.


팔을 들어 휙 휘감아 올리자 자신의 삶이 변화무쌍하게 전환되는가 하면


부드러운 미풍에 나부끼는 호접이 되었다.


  


때로는 그의 발이 물수제비, 은빛 물보라를 튕기는 조약돌처럼 걸었다.


때로는 그이 소매에서 학 한마리가 조롱(鳥籠)을 벗어나 하늘로 날아오르며


무한한 자유를 만끽하는 환희의 울음을 길게 토하듯 하였다. 


 


 



 


 


명인은 자신의 인생이 긴 꿈처럼 여겨졌다.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젊은 시절의 영상들.....


남들은 끼니를 걱정할 때 팔자 좋다는 소릴 들으며 출입하던


동래의 요정들과 스쳐간 숱한 기생들과의 풍류가 허망한 꿈이었구나.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돈을 물쓰듯 호기있게 살았던 지난 날들은


오로지 춤에 미친 인생이요, 춤에 홀린 인생이었다.


젊어서는 자신의 이름 석자에 따라 붙는 동래 최고의 한량, 입춤의 일인자,


영남 최고의 춤꾼이라는 여러 별칭들에 내심 뿌듯했었다. 


 


춤꾼 중에서도 최고의 춤꾼이 되기 위해


남들의 춤사위를 따라서 은연중에 훔쳐 내기도 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멋과 흥을 갖추려


얼마나 내심초사하며 공을 쏟았던가?


들녘에 날아 오르는 온갖 새들의 날갯짓을 보려 몸을 낮추고 기다리던 시간들이 오죽했던가?


돌이켜 보는 지난 삶의 여정이 뜬 구름처럼, 스쳐가는 바람처럼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명인은  자신의 삶을 춤에 실었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춤이 되었다.


텅 빈 공간에 펼쳐내는 자신의 몸짓은 환영에 불과한 것이리라.


한 순간 펼쳐지다 사라지는 무지개가 아니던가?


한 순간의 몸짓들은 때로는 허무한 낙엽처럼 애잔하게 떨어지고,


때론 아우성치듯 깃발처럼 펄럭이고, 때론 소망의 기도처럼 경건하게 피어나는


그런 행위들이 잠 순간에 空으로 화하는 허무한 것들이지.


춤은 空으로 회귀하는 몸짓인거야.


그래 舞는 無라고......


이런 깨우침은 참으로 긴 삶의 여정에서 우러나온 보석 같은 깨우침이었다.


그런 연후에 비로소 명인은 어느새 신선의 춤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는 마치 허공을 디디는듯, 창공을 유영하는듯, 깊은 호수를 걷는듯 자유자재로


우주공간에서 노닐며 소요유의 경지에 드는듯 하구나.


 


 



 


 


명인은 고령에 이를수록 자신의 전생이  제사장이라는 환상에 젖어들었다.


젊은 시절에는 춤이 한낱 놀이요, 풍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바뀐 것이다.


우주 천지간에는 하늘과 땅 있고 그 사이에 인간이 있다는 전통 사상에 젖어


춤은 인간이 하늘에 고하는 신성한 祭天 의식으로


하늘을 숭배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신념을 놓지 않았다.


 


춤은 땅을 디디고 사는 인간이 하늘을 끝없이 오가는 일인기라.


치켜들고, 내리깔고 , 펴고, 오무리는 일들이


모두 하늘로 상승하고 땅으로 되돌아 오는 일이 아니던가.

 

명인은 박자를 타고 가락에 몸을 맡기며 아름다운 춤으로


자신의 긴 생을 회고하며


온 정성을 다하여 온 몸으로 천지신명에게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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