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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벽을 쌓아야 할 때

 

 

가끔 도회지에 다녀올 일이 생긴다.


다녀온 후 늘 마음이 어수선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생활 리듬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마치 황토를 넣은 정화수, 지장수를 만들듯이


뜰을 거닐거나 냇가에 앉아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며 내면에 깊게 침잠함으로써


도시의 불순물로 혼탁해진 마음을 씻어내곤 한다.


 


 


 



 


 


 


자칭 禪墨幽居의 당호에 걸맞게 세워둔 몇몇 돌멩이 선사를 바라보다가


온종일 벽을 바라보고 앉아서 參禪을 하는 선사들을 생각한다.


소림사에 머무르던 達磨를 사람들은 면벽바라문面壁婆羅門이라 했다.


승려들은 토굴이나 암굴에서 일체 외부 세계와 단절하고 정진에 몰두한다.


 


 


 



 


 


 


壁이란 무엇인가?


 


88올림픽 때 그 유명한 ‘벽을 넘어서’란 노래가 떠오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로 놓인 장벽 -


이를테면 인종, 종교, 국가, 문화, 빈부귀천 등을 넘어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온 세계 인류에게 전하는 복음이리라.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는 각종 문명의 이기들 -


tv, sns, 휴대폰, 카카오톡, pc, 이메일, 등등의 첨단 매체들은


천하의 어떤 장벽도 가볍게 뛰어넘고 심지어 관통해 버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성과 공간성의 제약이라는


종래 개념이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으니 경이롭고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벽을 뛰어넘기만 할 것인가? 그것만이 능사인가? 


 


대우주는 숱한 별이며  달 같은 소우주로 이루어져 있으나


결코 소우주 하나가 대우주의 부속품이 될 수 없으며


개인은 집단 구성원 전체를 분모로 하는 분자라는 한 단위가 아니므로


개인, 개별자로서의 존재 자체는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維一無二한 절대적 가치를 지닌 존재가 아니던가?


 


 


 



 


 

움직임을 멈추고 조용히 앉아서

숨을 고르게, 천천히 들이 쉬며


눈꺼풀을 천천히 뜨며 고개를 돌리지 말아야 하리라.


자신을 바라보는 일을 우선해야 하리라.


 아직은 이웃에게 손을 내밀 때가 아니려니....


 


타인과의 소통 이전에 자신의 참 존재에 대한 사유와 성찰이 필요하리니


자. 이제는 담을 쌓고, 벽을 쌓아야 할  때이려니......


 


 


 


 



 


 


 


사람 사이에는 충만한 고요함, 여유의 공간, 여백이 있어야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지 않은가?


 


벽 안에 머무는 지혜를 길러야 하리라.


자신의 고요한 내면의 호수에 얼굴을 비추어 보며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왜 선사들은 벽을 치거나 자신을 벽 안에 스스로 감금하는 것인가?

벽이 단순히 물리적 장벽, 담장, 분단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리라.

스즈끼 다이세츠라는 일본 학자는

“벽이란 정신을 한데 모아 바깥 세상과의 인연을 끊는 것을 뜻한다.”

고 한다.

 

모든 사회적 단절로 가는 고립의 외톨이가 아니라

참되게 사유하는데 방해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 받아들인다.

 


 


 



 


 


선사들은 오로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 즉 참 본성을 알기 위해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러 현상들을 차단하기 위함이리라.


 


내가 오래 걷는 일들은 禪的인 체험을 하는 일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


내가 산다는 것,


존재하는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존재의 근본적인 진실인가를 직접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길에서 걷는 것이리라.


 


 



 


 


 


아! 그러나 근본적인 존재의 진실은 논리적으로 해명되지도,


말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현대인들은 불교의 알짜배기인


'체험'에 촛점을 맞추지 않고


오히려 곁다리 같은 '설명'에 촛점을 두려고 하니


맥을 잘못 짚은 것이리라.


 


 


 



 


 


 


홀로 걸으면서 말을 버린다.


언어 이전의, 언어를 훨씬 뛰어넘는 그 너머에 있는


의식을 일깨워야 하리라.

 

나 자신의 존재 전체로 직접 체험하는데서 생기는


순수한 직관을 통한 확실성을 찾아야 하리라.


걸으면서 맑게 깨어있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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