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곡의 글방

假想의 선비 여행 - 화림동을 선비처럼 걷다

 

 

여행의 최고의 즐거움은 최상의 자유를 누리는데 있으리라.


좋은 同行이 있어 함께 하는 여행도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겠지만


홀로 떠나는 여행은 결정과 선택의 권리가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하고 쉴 자리에서 쉬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제약이 없다.


 


세찬 바람이 불면 들판에 쌓아둔 짚동 틈에 안기거나,


산마루 양지바른 곳에 앉아 무심히 오가는 뜬구름을 바라보며


추억을 회상하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오늘도 여행을 떠난다.


오늘은 선비 여행의 컨셉이다.


 


오늘은 배낭 대신 괴나리 봇짐을 메고, 운동화 대신 짚신을 신고, 모자 대신 갓을 쓴다.


자동차를 버리고 도보로 화림동 계곡을 유람해야겠다.


오늘 점심은 삶은 고구마 몇 조각이 있으니 노잣돈은 필요없다.

 

 

 

 

 

내 비록 초야에 묻힌 이름 없는 선비지만


小學을 통해 修身을 하고 治國, 平天下를 이상으로 하는


大學 공부에 전념해 온 세월이 적지 않았다.


 


出仕에 뜻을 둔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한낱 뜬 구름 잡는 허망한 일처럼 여겨지는구나.


 


조정의 대신들은 당파의 이기심에 사로잡혀 무려 네 번의 士禍로


참혹한 일이 벌어지니 통탄할 일이 아닌가?


그간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하늘 높이 나는 기러기처럼


誅殺을 피해 세상을 등지고 산골에서 늙어죽었던 것인가?

 

 

 

 

 

 

산청 고을의 남명 조식 선생의 문하로 있으면서 官爵을 버리고


處士로 불려지기를 원했던 스승의 유언을 어찌 잊을 것인가?


 


벗들 중에는 입신양명에 뜻을 두고 있는 벗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그들을 탓하리오.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흙탕물 속에 뛰어 들어 모순에 찬 현실을 극복하고 개혁하려는 것을


어찌 비뚤어진 시각으로만 이해할 것인가?


 


다만 나는 평생을 선현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공부에 전념하며


청렴과 소신을 가진 선비로,


의로움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참된 선비가 되리라.


 

 

 

 

 

마을을 지나가며 목례를 하자, 대뜸 어디서 왔는냐고 묻길래 원학동에서 왔다고 하자


“안음 사람치고 풍류를 모른다면 굴러먹다 들어온 개뼉다귀라카이.”


초로의 노인이 인사조로 내뱉는 말이 상스럽지만 싫은 표정을 짓지 않는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해준다.


“그렇고 말고요. 허허”


 


노인의 말에는 은연중에 安陰 三洞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영남 제일의 洞天이라고 극찬하였던 세 고을, 화림동, 심진동, 원학동이


모두 안음현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弄月亭에서 인근의 儒生들을 초청해서 詩會를 성대하게 연다고


기별이 와서 안음으로 가는 중이다.


 


知足堂 박명부 선생은 이 고을에서 대쪽 같은 선비로 알려진 분이다.


영창대군의 죽음과 인목대비의 유배가 잘못된 처사임을 諫하다가


파직된 지족당 선생을 오늘 뵙게 되니 영광이다.


 


불의를 보면 분연코 일어서서 공론화하고 바로 잡아가는


선비의 시퍼런 기상을 배우고 널리 알려야 할 일이다.


조정의 권신이나 외척들의 부정부패가 있으면 목숨을 내걸고


상소문을 올려 바로 잡아가는 조선의 선비가 아니던가.

 

 

 

 

 

 

농월정 가는 길에 갓끈을 풀어놓고 濯足을 하며 여유를 가진다.


맑은 하늘에 유유히 떠가는 浮雲을 보며 삶이 참으로 덧없음을 실감한다.


 


이 시대에 선비로 사는 일이 참으로 고달프고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선비란 것이 어찌 신분의 상징만을 뜻하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통해 끊임없이 수양하며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의무를 평생토록 지는


고된  인생 역정에 들었다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선비에게는 삶 자체를 곧 공부로 삼아


지행합일하는 지성인이 되어야 하리라.


 


 

 

 

 

아! 농월정 그 이름만으로도 풍류의 극치로다.


달과 사람이 따로가 아니로다. 과연 주객이 혼연일체가 되어


한데 어울리는 황홀경이로다.


 


농월정 月淵岩이 선녀의 치맛자락처럼 펼쳐지는구나.


이곳에 오면 원학골 위천 상류의 분설담 너럭 바위와 강선대 모암정의 풍광보다


더욱 규모가 크고 탁 트인 눈맛과 운치가 넘쳐 흐르는구나.


 


우리 집안에도 滿月堂이 있어 물에 뜬 달을 보기 위해 연못을 파두었다.


 


달을 직접 바라보는 것보다 물에 비치며 어른거리는 달을 보며


운치와 흥을 즐겨온 우리의 정서는 참으로 뛰어난 것이다.


달에서 향기를 맡으며 시정으로 풀어내는


선비의 고아한 취향은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리라.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서 나고 자란


이곳의 선비들은 얼마나 축복을 받은 것인가?


 

 

 

 

 

 

문득 떠오르는 시 한수를 암송한다.


최근에 제주도에 귀양을 가신 동계 정 온 형님께 위로 겸 사람을 보내


만월당을 신축한다고 기문을 보내달라고 청했었다. 


인편으로 보낸 시편을 읽으며 그립고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쏟으며 몇 번을 읽었던가.


 


 


아담한 못  달빛이


가득 잠긴 누각이라


눈 앞에 트인 광경


용문산이 훤하구나


 


이와 같은 맑은 의미


어는 사람 적은데


기풍 높은 팔완당에


손자 또한 훌륭하네


 


내 지금 귤 섬에서


복부의 시름 안고


지난 날 무릉도원


찾아간 일 꿈 꾼다네


 


어느 제나 풀려나


그곳으로 달려가서


그대 함께 달빛 아래


술잔 다시 기울일꼬 


 


그대 집에 갔던 옛날


종종 함께 술 마셨고


새 현판 걸었단 말에


그대 위해 노래하네


 


동산위에 달이 뜨면


가장 먼저 빛이 들고


서산 너머 달 져도


그림자 아니 가셔


 


거울 같이 맑은 물


은하수 잠기었고


거문고 맑은 가락


항아 마음 설레이리


 


갇혔어도 보인다네


만월당에 뜨는 저 달


돌아가리 밥 새우다


귀밑 머리세어지네


 


 



 


 


 


오늘이 마침 보름이라, 만월이 흐르는 물에 잠길락말락 하며


선녀의 우유빛 치맛자락에 안기면 그 누가 감동하지 않으리오.


 


그러나 시회에는 약간의 긴장감과  두려움조차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선비들은 師事한 스승의 문하로서, 또 문중과 향리의 대표자라는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일이었다.

 

시회에서 은연중에 경쟁을 하며 공부한 것을

여러 사람 앞에서 평가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오늘의 시회에서 어느 선비가 좌중의 박수를 받으며 부러움을 받을 것인가?

어느 선비가 글이 부족해서 벌주를 받으며 망신을 당할 것인가?

 

 

 

 

 

 

오늘 이곳으로 오기 전에 꼭 들러서 참배를 드리라는


부모님의 말씀대로 황암사에 갔었다.


 


황암사에는 정유재란 당시 함양군수 조종도 공과 안의현감 곽준 공을 배향하고


별사에 유명개 공과 정용 공을 모시며 충의를 추모해 왔다.


정 용 의사는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하였으니


5년 후에 일어난 황석산성의 참화와는 무관하나


고을의 선비들이 집단으로 상소를 하여 별사에 모셔진 특별한 경우이다.


 


약소한 민족으로서 피비린내 나는 殺戮을 당하면서


가족과 겨레를 지키기 위해 55세의 나이로 싸움터에 뛰어들었던


선조는 진정한 선비였다.


 


  


 

 

 

과연 화림동이로구나.


덕유산 서남 비탈에서 뻗어내린 계곡에 청아한 소리로 흐르는 암반수는


이곳이 별천지가 아닌가.


水와 金이 상생하며 화합을 이루는구나.

 

이 아름다운 자연을 본받아 더욱 인격도야에 정진해야 하리라.

 

 

 

 

 

 

 

 

 

 

 

 

 

 

 

 

 

'청곡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訥辯(눌변)의 미학  (0) 2014.04.05
노루귀  (0) 2014.03.22
구룡포 바다의 새벽  (0) 2013.12.21
벽을 쌓아야 할 때  (0) 2013.12.12
고독 예찬  (0) 2013.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