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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당의 문인화방

관송 이정근 화백의 그림 한 점을 감상하며

 

 

官松관송 이정근 화백의 그림(운문산 가는 길) 한 점을 감상한다.

한지에 그린 수묵 담채화다.

 

화면을 절반으로 분할하는 사선 구도인데

가파른 산은 濃墨농묵을 사용하고 허공은 淡墨담묵을 사용하고 있다.

 空山不見人이란 싯귀가 얼핏 떠오른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큰 소리로 외쳐 보아도 인적 없는 산에서

隱逸虛靜은일허정한 분위기에서 느껴진다.

다만 한가로이 새 몇 마리가 날아가며 생동감을 준다.

 

 

아마도 작가는 운문산에 가는 길 어디 쯤에서

산을 바라보며 세상의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으며

무념무상의 선삼매에 들었을 것이다.

송대의 서예가인 황정견은 선을 터득한 후에 그림을 알게 되고 

노장의 도학을 배우고서야 禪畵境선화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수묵화에서 도가 사상과 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이런 그림의 禪味선미를 한껏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묵향을 즐기는 가족으로 인해

먹빛을 예전보다 좋아하게 되고 그 오묘함을 조금씩 깨달아 가는 중이다.

먹은 삼라만상의 색채와 화려한 형상을 초극한

마치 오행으로 분화되기 전의 음양과도 같은 색이다.

오색찬란한 것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는

노자의 감각 초극사상은 주역의 득의망상得意妄想과 깊은 관련이 있다.

 

수묵화는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회화가 아니다.

수묵화의 미학은 절제와 함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 그림의 절반이나 되는 여백은 우주 공간 즉 하늘이다.

고도의 절제와 함축으로 현화무언玄化無言의 미학에 이른다.

 

 

 

 

그의 고백이 이 그림의 여백에서 들려온다.

 

 

  마음 비우는 공부 열심히해서 이제는 바람 따라 흘러가는 한조각 구름이 되어

산천경계 좋은 곳에서 스케치도 하고, 가파른 산등성이 만나면 쉬어가기도 하면서

푸른 하늘에 한 점 부끄럽지 않게 거침없이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

 

남의 눈 의식하며 아둥바둥 펼쳐놓았던 그림마당은 몽당 빗자루로 쓸어버리고,

흐르는 맑은 물에 뛰어들어 나를 녹인 그림,

서너 살 때인가 빈방에 혼자 누워 누나가 아끼던 몽당연필로

벽에 낙서하고 놀던 그런 그림, 한 점이라도 그려보고 싶다.

 

가슴 저 밑바닥에 숨어있는 또 다른 나에게 아련한 모습 보여주길 청하며

바람결에 길을 물어 보련다.

 

(작가 노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