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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달력을 보며

 

한 해가 시작된다.


새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하는 것은 지난 해를 묵은 해로 치부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런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싶어서이다.


 


어제 뜬 해와 오늘 뜬 해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인데


迎日영일의 해변은 人山人海인산인해.


일출이란 자기 최면을 위한 연례 놀이요, 다짐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나는 시큰둥하다.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은 서산에 지는 장엄한 낙조의 전주인 것을......


장엄한 낙조는 다시 은은하게 떠오르는 달의 전주인 것을.......


아아 새해 아침은 서산에 기우는 찌그러진 달을 품고 있구나.

 

 

 

 

 

새해 달력이 좋은 까닭은 날짜 아래 빈 공란의 충만함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면 공란에 철커덕 수갑이 채워지겠지만


아직 소유 당하지 않은 싱싱한 시간들이 욕망을 자극한다.


 


월별로 틀에 박힌 달력보다 나는 매일 달력이 좋다.


1/30에 제한되지 않는 하루, 다른 날과 비교되지 않는 하루,


요일에 구속 당하지 않는 야생마의 원기가 좋다.


 

 

 

 

 

 

매일 아침 하루의 달력을 열고


일상의 빨랫줄에 걸린 꿈틀거리는 욕망의 주머니에 볕 가득 채우고


 


늘 다니는 골목길을 낯설어 하면서


들숨과 날숨 사이의 寂寥적요에 머무르고 싶다.


 

 

 

 

 

 

밤에는 책을 읽으며 선현의 지혜에 귀 기울이고


아침에는 읽던 책의 활자들을 모두 털어버리고 싶다.


 


 


낮에는 조롱을 열어 새를 날려 보내야지.


없을지도 모를 저기, 내일을 위해


꿈꾸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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