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도 제각각 멜로디와 기세와 표정이 있는 듯 하다.
절간 해우소에서 건강한 스님이 방사하는 온 골짜기를 울리는 우렁찬 방귀가 있는가 하면
새 며느리가 시부모 앞에서 터뜨린 얄궂은 방귀 등은 웃음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나는 평생을 통해 이렇게 방귀를 기다려 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방귀 같지도 않은 방귀에 쾌재를 부른 일도 없었다.
그것은 차라리 ‘피식 웃음’ 같은 것이었다.
항문 한쪽으로 새어나오는 미미한 진동과 함께 약간의 가스가 방출한 것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방귀는 방귀였던 것이다.
“먹는 것이 있어야 방귀가 나올 것 아니겄소.”
방귀가 나왔느냐고 며칠 째 묻는 간호사에게 퉁명스레 대꾸하다가
혹시나 나오려나 하고 좌변기에 앉아보았지만 전혀 기미가 없었던 날이 사나흘은 되었었다.
위장을 수술하고 중환자실에서 이틀을 머물다가 입원실로 간 이후
정맥에 직접 투입하는 하얀분말액으로 연명을 했으니 위장이 제대로 작동할리 없었다.
방귀는 음식물이 배 속에서 발효되는 과정에서 생기어 항문으로 나오는 구린내 나는 무색의 기체다.
그래서 건강한 이들에게는 방귀를 에티켓의 방해물로 여기기 일쑤가 아니던가.
그러나 위장 수술 환자에게는 그 의미가 전혀 달랐던 것이다.
방귀는 내장의 여러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수술을 하면서 사용한 독한 약물과 가스들이 체외로 방출되고
기관과 기관 사에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던가.
그것은 한 방의 축포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축포는 이제 미음을 들어도 좋다는 보상의 전조였다.
그 방귀를 뀐 포상으로 말간 미음과 물김치 국물이 지급되어
식사 시간마다 소외받던 설움도 떨쳐 버렸으니 기분 좋은 일이었다..
‘고마운 방귀’ ‘방귀 만세’
'사랑방 담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촉도 감상 (0) | 2015.11.05 |
---|---|
내 삶의 도전과 응전 (0) | 2015.10.26 |
생명을 기다리다 (0) | 2015.10.22 |
병원복도의 동반자 (0) | 2015.10.20 |
차를 마시면서(1) (0) | 2015.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