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작가가 분명한 재명품(在銘品)이 있는가 하면 이름없는 직인(職人)의 무명품(無銘品) 또한 적지 않다.
그런데 무명품의 가치가 재명품의 가치를 압도하는 경우도 많으니 불가사의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 단적인 사례로 일본인들은 이도(井戶) 다완을 제일 먼저 손가락에 꼽는다.
이도 다완은 전형적인 조선의 민기(民器)인데 아무 무늬도 없으며 일반인들이 사용했던 밥그릇이었다.
그저 평범한 도공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명기로 인정받은 지 오래다.
일본의 많은 명공(名工)들이 이도 다완의 운치를 좇아 300여 년 동안에 무수한 다완이 만들어졌으나
이도 다완을 뛰어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한다.
이런 의문에 대한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일본인의 불교 미학론은 종래의 미학이론과 독특하여 공감을 준다.
그는 민예품에서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이도 다완과 같은 무명품은 개인적인 천재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름도 잘 모르는 공인에 의해 제작된 이러한 명품은 타력에 의한 수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무명의 공인들은 자기의 역량에 의지하는 작가가 아니다.
서양의 개인주의에서는 천재적인 작가들이 나와서 순전히 개인적인 미의식과 의지와 노력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자신의 작품이라는 표시를 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실생활에서 사용되었던 민구류들은 특정한 작가가 아닌 직인들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그들은 특별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누구도 사용한 적이 없는 독특한 재료를 찾아서 고민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남들이 구사하지 않은 창조적인 기법을 동원하려고 고뇌에 찬 작가 의식을 가진 이들도 아니다.
또한 명성이나 부를 얻으려는 욕심에 사로잡히지도 않은 채 그저 관례적인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전통을 다른 것들이다.
이런 요소들은 총체적으로 타력에 의한 것이며 수동적인 것이다.
나는 지금 제주도의 돌하루방 한 쌍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다.
제주도에서 흔하디 흔한 현무암으로 어느 곳에 쳐 박혀 있었을 가볍고 구멍이 송송한 돌이다.
제주도에서 돌을 만지는 이들은 누구나 몇 개씩은 만들어 보았을 것이다.
직접 작업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망치와 정만 있으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왕눈에 담긴 포용심과 천진함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푸근해 진다.
돌할아버지는 매우 유식하거나 지혜로울 것 같지도 않다.
그저 푸근한 표정과 웃음으로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고 들어줄 것 같다.
늘 바라보아도 싫증나지 않을 선악과 미추의 분별 이전의 민예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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