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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농산리 돌부처

 

농산리 돌부처님 앞에서 잠시 쉬어 간다

휑뎅그렝한 부처지를 떠나지 못하는 돌부처는 늘 침묵 즁이다

폐사지의 내력을 고주왈 미주왈 말해봤자

덧없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리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울 바라보는 사람들이라 그러는지....


 

돌부처의 영험을 믿는 신도의 정성이 담긴

 연등이 유효기간을 넘어서도 꿋꿋이 매달려 있고

누군가의 소망의 불을 지폈을 촛농 흘러내린 촛대가 바위 아래 가지런하다


 

돌부처의 푸석푸석한 광배에 돋은 검버섯이며 무심한 표정에

오랜 세월들이 닳고 삭아서 켜켜히 눌러 붙어있다

보는 둥 마는 둥 무심한 돌부처 앞을 한 바퀴 돌아 가려는데

엉덩이를 대고 한참을 머물기로 한 것은

돌부처님의 나지막한 독백에 닿게 된 것이라



 


미소 밖에 더 있으리!

 

알듯 모를 듯한 말씀에 차분히 돌부처의 미소를

보다가 읽다가 더듬어 나간다

성자의 미소!

족히 천년을 머금었을 미소가 비에 씻기고 바람결에 날려

어슴프레한 중에도 윤곽을 잃지 않는다

모난데라곤 없는 원만한 얼굴선에 머금은 미소는

만물을 품은 대지의 어머니의 자애로움이다

온갖 번뇌를 벗어나 열반의 경지에 든 깨달음의 징표다



미소 밖에 더 있으리오란 말의 의미에 고개를 끄덕이며

돌부처님의 화두를 풀어나간다

근처에 툭 던져진 방구 하나가 무슨 큰 뜻을 품기나 하리오만

인연이 닿아 석수의 정에 무수히 쪼여지며

가사를 걸치고 상투를 얹으며 거룩한 형상으로 거듭나는 광영을 입은 것이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체할 수 없는 존재 그 자체로 벅찬 것인데

중생들의 우러름을 받는 합장 기도에 가슴이 터질 듯 기뻐했으리



진달래 피었다 지고 솔바람 일렁이는 이 골짜기에서

뭇 인생들의 덧없는 천년의 생사고락을 목도하며

어떤 이론과 말로 중생을 구제하고 고해에서 건져내 위로할 수 있을까 고뇌햇으리



업보의 거미줄에 걸린 중생들의 기도에 응답하기 위해

불경 세 수레보다,

삼천만배보다 값진 것이

 

이 미소라고

청정무구한 미소라고 말하는

돌부처의 독백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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