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사유의 시선으로 포착한 풍경 한 컷이다
바닷가 가파른 산허리춤에 만들어진 계단식 논들이다
논다랭이들이 손바닥 처럼 좁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이 풍경을 예사로이 보지 않았던 것이 무엇일까?
내가 포착한 관념은 절박함으로 압축된다
오죽이나 쌀이 급했으면 이리도 경사가 급한 산을 논으로 만들었을까
밭은 약간의 경사가 있어도 가능하지만 물을 괴어야 하는 논 농사는 수평을 유지해야 하는 고난도와 집약적인 노동이 필요한 것이다
계단식 논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논을 만들다 보니 계단식이 된 것이다
풍경의 한 켠에는 모내기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몇 평쯤 될까? 저기서 수확은 얼마나 할까?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쌀을 사서 먹는 것이 비교 우위가 아닐까?
이런 생각들로는 이 풍경이 지닌 절박함이라는 삶의 진실을 느끼기 어렵다
절박함이라는 관념은 내재적 접근으로 이곳에 살거나 살았던 사람들의 구체적 삶을 열린 마음으로 폭넓게 받아들일 때 가능한 것이다
농부는 이 경사지를 개간한 조상이 물려준 토지가 매물의 대상으로 거래하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길지 모른다
그들은 자본주의적 거래 관행이나 시장의 수요 공급의 원리를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척박한 조건마저도 탓하지 않고 농사를 신성한 직분으로 받아들이는 순박한 마음은 경천의 유사 신앙에 가까운 것이리라
그러기에 효율과 능률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르침과 감동을 준다
저 다랭이 논에 찰랑찰랑해 물비늘이 비치고 물보러 나온 농부의 잔잔한 미소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빚어내는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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