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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당의 문인화방

운향조우정 선생 관련 기록

                                                                                

                                                                                 

 

 

 

 

경북일보(2006. 9. 7) 기사 전문

 

 

포항 여성 대모 조우정씨 별세 (여성문화회관 건립 등 숙원사업 이뤄) 문인화로 화명을 날린

 

운향조우정 선생이 6일 오후 1시 포항 선린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전남 장흥 출생인 조우정 선생은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한 후 노동부 행정상담원위원으로 공직에 첫발을 들여 놓았다.

 

이후 1990 - 2000년까지 포항시여성문화회관 관장을 끝으로 30여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한 조우정 선생은

 

여성문제 및 노동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여성계의 숙원이던 여성문화회관 건립의 꿈을 이룬 공로로

 

2005년 포항시 여성상을 수상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 포항시지역 행정상담위원으로 위촉되 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크고 작은 발자취를 남긴 선생은 5년 전 운향문인화실을 개원, '정신이 살아있는 문인화' 장르를 개척하는 등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동안 대한민국서예대전 문인화 부문 초대작가, 사단법인 한국서예협회 경상북도지부 이사, 운영위원, 심사위원,

 

포항시 서예가협회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지역 서예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가족으로는 남편 이갑무씨와 두 딸이 있다. 발인은 8일 오전 8시 장지는 포항공원묘원

 

 

故 조우정의 문인화 정신

(2006. 9. 6 문인화가 운향 조우정 별세)

 

운향 조우정

1942년생

1965년 이화여자대학교 법대 졸업

포항시여성복지회관 관장 퇴직

소봉 모성수, 창현박종회 선생 사사(문인화)

농산 정충락 성생 사사(전각)

솔뫼 정현식 선생 사사(한글)

2000년 조우정 문인화연구실 개원

2006년 9월 별세

 

 

포항 여성 문인화가 작가로 이름을 날린 운양 조우정씨가 지난 9월 6일 오후 1시경 포항 선린병원에서 별세했다.

 

1942년 전남 장흥 출생인 고인은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한 후 노동부 행정 상담 위원으로 공직생활을 했다. 2000년 포항시여성문화회관 관장을 끝으로 30여 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감한 고인은 조우정 문인화 연구실을 개원, ‘정신이 살아있는 문인화’를 표방하며 예술 활동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 후 작가 활동과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던 때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조우정 씨는 대한민국 서예대전 문인화 부문 초대 작가, 한국서예협회 경상북도지부 이사 및 운영. 심사위원, 포항시서예가협회 고문으로 활발히 활동함으로써 지역 서예계의 대모와도 같은 존재였으며, 여성문제와 노동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 끝에 여성계의 오랜 숙원 사업이던 여성 문화회관 건립을 이루었고, 그 공로로 2005년 포항시 여성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고인의 제자들은, 스승의 문인화 정신을 계승하고 운인화 공부에 더 매진하기 위해 기존의 ‘운향문인화 연구실’을 장은애 회장을 중심으로 15명의 회원이 동아리 형식으로 재구성하였다.

 

이와 같은 소식을 접한 창현 박종회 선생은 제자였던 고인의 문인화 맥을 잇기 위해 격월로 원거리를 방문하여 지도하겠다고 약속하였고, 또한 포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솔뫼 정현식 선생은 운향문인화연구실 활동에 대한 제반 후원을 약속하는 등 훈훈한 사례가 뒤를 이었다.

 

(작품 소개 : 귀향, 향기로운 날, 다향으로 번지는 날, 탐진강)

 

( 월간 묵가 2006. 10월호 )

 

 

告別辭

 

                                                          (운향 조우정 선생님 영전에 삼가 바칩니다.)

 

오늘 유난히도 맑은 가을 하늘의 청명한 빛깔과 따사로운 볕을 더 이상 선생님과 나누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이제 이별을 고해야 하는 비통한 심정으로 제자들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희 제자들은 지금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합니다. 남겨 두고 가신 장로님과 두 따님과 다른 가족들의 큰 아픔을 위로할 어떤 말도 없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이제 가족들과 친지 그리고 정들었던 교회 교우들의 간절한 기도와 눈물로 주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리라 믿으며 슬픔을 삭입니다.

선생님의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고백을 개인전 서화첩에서 하셨지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렇게 독실한 신앙을 붓으로 그리고 쓰던 기도를 전지하신 하느님께서 갚아주시리라 믿으며 큰 위안으로 삼습니다.

 

선생님!

퇴직 하시고 화실을 개원하신 이래 6년째 문인화를 배우는 제자로서 선생님과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을 이제 접어야 합니다.

저희 제자들은 문인화 부문의 국전 초대작가이신 선생님으로부터 그림 공부만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승으로서 고매한 인격과 높은 학식 그리고 고결한 정신과 단아한 품위와 온화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선비였습니다.

당신의 인품과 사상과 학문이 문인화 작품으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작품만이 아니라 스쳐가는 말씀 한마디와 일상 행적 속에서 선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붓으로만이 아니라 생활에서 은은하게 드러나는 그 정신과 품위를 흠모하고 본받으려 노력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30년 가까이 문인화를 하시며 이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선비의 일편단심처럼 마치 구도자처럼 치열하게 문인화와 서예와 전각의 길을 걸었습니다.

3년 전 암수술을 하기 위해 서울로 가시기 전날 늦은 밤까지도 화실에서 제자의 낙관 도장을 새기면서 털끝만큼의 두려움도 흔들림도 없었던 그 꿋꿋한 기개를 저희는 보았습니다.

수술하신 후 항암 주사를 맞아 쇠약해진 몸으로도 회원전을 지도하시며 딱딱한 기와를 전각도로 파내시는 분이셨지요.

돌아가시기 전에도 병원에서 낮은 목소리로 제게 “일필하고 싶다.”하시며 활화산 같은 창작 의욕을 보이신 분입니다.

선생님은 당신에게 매우 엄격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내면적 수양을 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창현 박종회 선생님께서 문병을 오신 적이 있습니다. 꺼져가는 의식과 말 한마디조차 어려운 기력인데도 사사받던 스승 앞에서 소녀처럼 화사한 표정을 지으시며 남은 기력과 정신을 집중하여 행여 흩어진 매무새를 고치려 머리칼을 몇 번이나 추스리고 링거 바늘로 퍼렇게 멍든 팔을 보이지 않으려 소매를 당겨 내리던 단아함을 저는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온화하며 낮은 소리로 말씀하셨지만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용감한 행동파였습니다.

 

여성회관 건립 기금 조성을 위해 상경하셨을 때 지역 출신 정치인들을 찾아가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실 때는 열혈 청년 같으시면서도 당신이 이루신 일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을 보이셨지요.

여성 회관을 운영하시면서 어떻게 하면 포항 여성들이 문화적 예술적으로 높은 소양과 격조 높은 취미생활을 하게 할까 많이 고민하셨지요.

 

제가 직접 들은 선생님의 못다 이룬 소망을 저는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전을 열어 기금을 마련하고 싶다고 하셨지요. 당신의 많은 작품들을 내놓아서 기금이 마련되면 전직 대사 출신의 오라버니께서 일하시는 평화 재단에 기부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평화 재단은 가난하고 소외된 나라의 이웃을 위해 몇몇 나라에 병원을 지어 의료 혜택을 주는 단체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공공의 이익과 가난한 이들을 위하는 분이셨지요.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한 해박한 법적 지식을 가진 행정 공무원으로서 당신의 지식과 따뜻한 손길을 베풀었음을 잘 압니다.

 

선생님은 예술인들을 많이 배출한 예향 중의 예향이라고 할 수 있는 장흥사람임을 늘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고통스런 투병 중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으시고 먹과 붓으로 고통을 승화 시키며 그 본향으로 귀소 하고픈 심정을 작품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동향 선배이자 탐진강 연작시로 잘 알려진 위선환 시인의 문학 세계를 흠모하면서 그분의 글들을 화폭에 화제로 여러 번 사용하셨지요.

 

이미 시한부 삶을 사시던 작년 가을 작품을 봅니다.

스산한 바람결에 갈대가 나부끼고 새 몇 마리가 비에 젖어 돌아오고 있는 긴 탐진강 위를 날아가고 있는 작품입니다.

또 먹빛이 고운 바위에 앉은 왜가리가 푸르러진 빛으로 여기와 저기 사이가 떨어진 몇몇 섬들을 바라보는 그림이 특히 저를 안타깝게 합니다.

당신의 저무는 생, 그 아픔과 소망을 그림으로 승화 시킨 작품들임을 잘 압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고향의 강 ‘탐진강에 한 줌 재가 되어 흐르고 싶다’라는 말씀을 저희는 몇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입술을 깨물고 독하고 야무지게 관 속에 계신 선생님을 부르며 제자들의 결의를 다집니다.

선생님!

저희는 졸지에 길 잃은 양이 되었지만 물려주신 정신을 마음에 새기고 부단하게 정진하여 선생님의 그림 세계의 맥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사랑하시던 부군, 이 장로님께서 저희를 모임을 지켜보고 계시고 저희는 장로님을 선생님 대하듯 하겠습니다.

 

저희가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입장임을 잘 아는 문인화계의 대가이자 진정한 선비라고 늘 말씀 하시던 창현 박종회 선생님께서 먼 길을 달려와 저희를 지도하시겠다고 흔쾌히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저희가 아둔하고 게을러 선생님의 그림과 정신을 다 잇지 못한다고 해도 한걸음 한걸음 정진하면서 부단하게 노력하게 저 세상에서도 저희에게 힘을 주소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님 이제 치열했던 이승의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 품에서 편히 평화와 안식을 누리소서.

 

2006년 9월 8일

 

제자 서한당 장은애 삼가 올립니다.

 

 

 

 

 

 

 

 

운향 조우정 선생님을 추모하며

 

강성태(서예가, 시조시인)

 

며칠 째 구름 파도의 일렁임에 잠잠해져 가던 달빛이 계절을 재촉하는 찬비에 빛을 일어버린 때문인가요? 조락의 계절은 아직 저 만치 먼데, 아 어인 일로 철천지 머나먼 길을 철이른 잎새 떨구듯 황망하게 가버리고 마셨습니까? 그토록 문인화의 향과 예술의 꽃을 온 몸으로 피워 놓으시고 무엇이 그리 급하여 홀연히 떠나버리고 마셨습니까? 애절한 가슴 가눌 길 없고 슬픔의 눈물이 눈앞을 가리기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평생 공직에 몸담으시면서 외곬스럽게 예인의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온화하고 인자하신 성품으로 늘상 넉넉한 웃음과 자상한 모습을 보이셨던 선생님....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남을 대하시면서 붓과 전각도(刀)를 잡으실 때는 추상(秋霜)같이 단호하고 꼿꼿하셨던 선생님....

일찍이 열린 가슴으로 문인화의 화법과 기법을 터득하셔서 여백미가 살아나는 독창적인 창작으로 서예술의 변방- 포항에서 문인화의 불모지를 묵묵히 가꿔오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연하신 선생님께서 잡으신 붓 끝에서는 때론 폭포수 같은 장쾌함과 때론 잔잔한 호수의 명경 같은 차분함과 투명한 필치가 살아났습니다. 사방예술의 극치인 전각에 매료되어 각도(刻刀)를 잡고 인석(印石)을 다듬으실 때는 끼니도 잊으신 채 몇 번씩이나 내려오는 안경을 고쳐 끼시면서 몰두 하시곤 하셨습니다. 사방 몇 인치되지 않는 그 자그만 돌에 자신은 물론 온 우주를 다 담을 수 있다며 그리 애착과 열정을 아끼지 않으셨지요.

포항여성복지회관장으로 재임하시던 지난 2000년 6월, 선생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돼버린 개인전을 여시던 때가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단아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시고 담담한 어조로 ‘20여 년간 걸어온 흔적을 내보이는 것이 여간 어렵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시면서 ‘자칫 자기 부정의 붓장난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두렵기만 하다’고 하셨지요. 아아, 선생님은 ‘붓장난’이 아니라 ‘붓 멋’을 맘껏 펼치시면서 고매하고 고결한 화풍의 맥을 잡고 창작과 후학 양성에 힘쓰신 것입니다.

저는 그 당시 선생님의 ‘사는 게 별거 있나요’란 작품의 화제가 아직도 귀에 맴돕니다. ‘사는 게 별거 있나요 / 꽃이 피고 / 지듯이 / 바람과 구름이 / 흘러가듯이 / 그런 거겠지요’ 아, 지금도 그 글귀가 생각나서 너무나 목이 메일 따름입니다. 물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사시다가 구름처럼 흩어지시며, 이젠 구름의 고을로 들어가 버리고 마셨습니까? 그래서 선생님의 아호를 운향(雲鄕) 이라 하셨는가요? 너무나 안타까워 필설로 못 다함이 서럽기만 합니다. ‘선비의 그림놀이’라 전제하시며 서예, 서화 향수자를 위한 멋진 판을 벌이는 운향선생님의 맑고 고아(高雅)한 서정을 높이 사셨던 농산(農山)선생님의 쟁쟁한 말씀이 들리기라도 하시는 겁니까?

그간 선생님께서 뿌리고 가꾸며 거두어주신 문인화와 전각과 후학들은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감당 못하고 주체하기 어려운 일들 앞에 호곡만 커지고 깊어집니다. 포항에서는 처음으로 전각 그룹전을 개최하며 전각 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셨지요. ‘한뜰전각회’를 위해 밤낮없이 돌, 칼과 씨름하시다 눈이 더욱 침침해지고 팔 힘이 다 빠져버려 물 컵을 못 잡을 정도까지 열의를 보이셨지요. 작년에 치러진 ‘운향문인화회원전’은 선생님께서 살아생전 그토록 바라시고 꿈처럼 여기셨던 일로, 그렇게 선생님과 제자 모두 혼연일치로 이뤄낸 노작(勞作)인데, 이제 제자들은 어디서 누구에게 지도를 받아 두 번째 작품전을 열어야 합니까? 문인화와 전각학습이 이제야 반석에 올려져 앞으로 주렁주렁 열매 맺을 일만 남았는데, 선생님께선 말없이 누워 계시기만 하니 슬픔의 강이 바다를 이루고 비통한 가슴은 절규로 메아리칠 뿐입니다. 선생님의 열정은 그리 꿋꿋하셨고, 제자들의 향학의지는 그리 가열찼는데, 그 모든 연(緣)과 뜻을 멀리하고 어찌 그리 초연히 떠나가실 수 있습니까?

불과 5일 전 병실에서 선생님 손을 잡았을 때, 허공에 뭔가를 말씀하시면서 가늘게 떠는 손으로 제 손을 꼭 잡아주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늘 큰 누님 같은, 아니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뇌리에 각인됩니다. 늘상 한결같은 모습으로 인자하고 너그러운 인품을 보이시며 서화 예술에 심취해 오신 선생님은 현대 여성의 귀감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머니를 여윈 슬픔, 선생님을 잃은 아픔 못지않게 포항 서예계의 큰 별이 졌다는 비보는 포항 아니, 전국의 서예, 문인화가들의 가슴을 더욱 저미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선생님의 못 다 이루신 뜻 저희들이 받을어 꽃을 피우고, 고아한 화풍의 맥이 이어지도록 숭고한 예술혼을 길이길이 사뤄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운향 선생님!

이제는 세상의 온갖 번민도 고뇌도 다 잊으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드소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천만근의 슬픔을 안고서 숙연히 고개 숙여 삼가 명복을 비옵니다.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누리소서.

 

(월간서예문인화 2006년 10월호 게재 기사)

 

조우정 작가 약력

(友石, 雲香, 갈산, 雲香齊)

 

- 1942년생

- 1965년 이화여자대학교 법대 졸업

- 포항시 여성복지회관 관장 퇴직

- 소봉 모성수 선생 사사(문인화)

- 창현 박종회 선생 사사(문인화)

- 농산 정충락 선생 사사(전각)

- 솔뫼 정현식 선생 사사(한글)

- 2000년 조우정 문인화 연구실 개원

- 2006년 9월 별세

 

■ 공모전

-동아미술대전 입선(89 전각)

-대한민국 서예대전 입선(89 미협, 전각)

-대한민국 서예대전 입선. 특선(92, 93, 96, 99, 02, 04 : 서협.문인화)

-신라미술대전 입선. 특선( 85, 88, 98 ,99 : 문인화)

 

■ 초대전 및 단체전

- 경상북도 서예대전 초대작가 출품 11회(95 - 05)

- 포항시 서예가 협회 초대전 11회 출품

- 포항묵화회 회원전 외 개항제 12회( 80 - 91)

- 한중 서예교류전(문인화 2회, 전각 2회)

-밀레니엄 예술제전(빛으로 미래로) - (00 - 05)

 

■ 공모전 활동 및 심사

-포항시 서예대전 초대작가. 운영. 심사위원

-진사 서화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서예문인화 대전 초대작가

-정수 서화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서협)

-대한민국 문인화 대전 초대작가

-한국 전각회 회원

-대한민국 서예문인화 회원

 

■ 개인전 및 문하생 회원전

-개인전 1회( 2000년)

-포항한뜰회 전각연구회전(04)

-포항한뜰회 문인화전(05)

 

 

 

회원 동향

 

- 운향 조우정 선생의 문인화 정신을 계승하여 회원 상호간에 문인화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

15명의 회원으로 ‘운향문인화 연구실’을 동아리 형식으로 재구성

 

- 회 장 : 장은애(010-5491-5657),

부회장 : 장미화, 김옥진,

총 무 : 김윤순

 

-화실 위치 : 포항시 우현동 신동아베르디 관리실 2층

 

- 스승을 잃은 어려운 상황을 듣고 창현 박종회 선생께서 제자의 문인화 맥을 잇기 위해 격월로 원거리를 방문하여 지도하겠다고 약속

 

- 고인과 교분이 두터웠던 솔뫼 정현식 선생께서 동아리 활동에 대한 제반 후원 약속

 

 

경북일보 12월 12일자 기사입니다. 고 운향 조우정 선생 유작전( 11월 17일자 본 자유게시판 게시물 참조)의 뒷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아래에 옮깁니다.
유작전 소식에 관심을 보여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위선환 시인) 



"선생은 갔지만, 정신은 그대로 남아"

운향 스승 창현 선생 지도 받아 스승 기리기 위해 추모전 개최
한뜰회, 스승들 호를 따'운현 문정연' 명칭 변경 예정

이선복기자 2007/12/12


지난 8일 수업이 한창인 고 운향 조우정 선생의 문인화실을 찾았다. 19명의 '한뜰회' 회원들이 창현 박종회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열정을 보였다. 선생이 그리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하고, 그동안 그렸던 그림을 꼼꼼히 검사받기도 했다.

창현 박종회 선생은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문인화 등 파격적인 실험정신으로 문인화의 지평을 넓혀온 대가.

운향 선생이 위독할 때 병실을 찾아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위해 운향 선생이 작고한 1년여 전부터 서울에서 포항까지 먼길을 마다않고 매월 1회 회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운향은 나의 오랜 제자였다. 스승 잃은 제자들이 안타까워 1년 정도 지도를 약속했었다. 약속한 1년이 지났지만 배우고자 하는 제자들이 남아있어 그만둘 수 없다"고 창현 선생은 말했다. 보통 스승이 죽으면 수제자가 남은 제자들을 가르치는게 보통인데 스승이었던 창현 선생이 가르친다니 감탄할 따름이다.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한뜰회 회원들은 1년 밖에 안된 초보부터 30여년이 다 돼가는 중진까지 다양하다. 미숙한 실력이지만 작고한 스승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난달 17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문인화 정신의 한국성 시추 대작전'이라는 1주기 추모전을 열었다.

회원들도 지난 전시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전시 전날까지 고심할 정도로 걱정을 많이 했다. 막상 전시를 하고나니 만족스러웠다"는 한 회원의 말처럼 아마추어 전시답지 않은 대작전시로 큰 자신감을 얻었다.

전시회 이후 문인화가 배우고 싶어 스스로 찾아온 회원이 있을 정도로 주변의 반응도 뜨거웠다. 그 중에서도 "그림에서 향기가 나는 것 같다"는 유치원생들의 반응이 재밌다. 실제로 먹을 만들 때 약재가 들어가기 때문에 향이 나기도 한단다.

창현 박종회 선생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것이다. 창현 선생은 "한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한발짝 물러서는 것처럼, 실력이 있더라도 사군자, 특히 난초의 획을 분명히 익히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뜰회 장은애 회장은 "추모전을 앞두고 작품을 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기초에 소홀했다. 후배들을 그룹으로 나눠 중진들이 나서서 가르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그동안 전시에만 매달려 기초를 다지지 못한 점에 대한 회원들 스스로의 반성이 이어졌다.

문인화는 먹이 번지는 매력이 있다. 먹에 물을 적당히 섞어 먹의 농담을 조절하는데, 이것이 바로 유화가 흉내내지 못하는 매력이다. 요즘은 여러가지로 채색하기도 하지만 한가지 색만으로도 지루하지 않게 그려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면 할수록 더 어려운 것이 문인화란다.

이제 '한뜰회'는 스승들의 호를 따 '운현 문정연'(운향 창현 문인화 정신 연구 모임)으로 명칭을 변경할 예정이다. 문인화 정신을 잇는다는 회원들의 마음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운향 선생은 갔지만 선생의 정신은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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