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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단오의 추억



어쩌다 눈길이 간 달력에 씌어진 작은 글씨로 접하는 단오
뜰에 핀 창포꽃 몇송이를 문에 꽂아두며 단오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리고 창포물 대신 샴푸로 머리를 감고 수리떡 대신 향기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이 통하는 마을 사람도 딱히 없으니 고운 님 하나 초대하듯 마음에 품고 몇 줄의 글로 글로 단오를 맞는다

음력 5월5일!
같은 두 양수(홀수)가 만나는 날은 길일이 아니던가
지난 삼월 삼짓날과 다가올 칠월칠석도 좋지만 단오만큼 풍성하리오
이제 파종도 끝났으니 이 좋은 초여름날은 농사를 쉬고 여유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보세
개미처럼 일하는 마을 여인네도 오늘은 쉰다네
이 명절은 우리 할머니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다네
일상에 바빠 헝클어진 머릿결을 깔끔히 단장하며 재액을 막아준다고 믿는다네
창포 뿌리를 우려낸 물은 성스러운 기운이 담겨있다네
질병과 사고의 모든 액운이며 액귀가 범접하지 못하도록 숱한 머리카락에 스미게 하는 방어와 안전의 기도라네
아침 일찍 창포물에 머리를 헹구는 여인의 살짝 드러난 목덜미가 더욱 고우니 농익은 여인의 향기가 달아오르는 여름의 햇볕에 퍼지니 이 중양절에 창공은 더욱 풍성하고 로맨틱하구나

오늘 하루만이라도 사람답게 그리고 여인답게 누리고 싶은 이 욕구를 어찌하리오
명절에는 먹거리도 별식이 제 격이라네
길일은 평소와는 다른 차이와 품격을 높여야 하지 않겠는가
며칠 전에 준비해 두었던 수리취로 향긋한 절편을 만들어  먹어보세
즐거움은 나누어야 배로 커지는 법이라 하지 않는가
예쁜 쟁반에 떡을 담아 이웃에 돌리니 기쁨이 샘솟는구나

오늘은 한껏 놀아야겠네
우리 마을 고목에 걸어둔 그네는 올해도 많은 여인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겠지
그네를 뛰며 창공을 비상하는 날렵한 새가 되어보세
힘들고 억눌린 세상에서 벗어나 해방과 자유를 만끽해 보세여인의 치렁치렁한 머리카락과 치맛자락에서 풍겨나오는 여인의 분내만으로도 단오는 향기롭다
장터에는 남정네 씨름판이 벌어진다니 구경을 안할 도리가 없다네
남정네들의 솟구친 힘줄이며 기합소리는 양기의 상징이며 절정이라 어느 여인이 발걸음을 하지 않으리오
그러니 머리에 나비 모양의 단장을 하고간다네 모아둔 고운 비단 조각으로 나비를 만들고 창포꽃 한송이를 꽂아 한껏 흥을 내면 뭇사람들의시선을 받지 않겠는가

단오는 태양의 축제라네
이 깊은 의미를 알고 즐기는 명절이 역사 속으로 가라앉으니 아쉬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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