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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구석 청소

청소를 하는 중이다※
계획적, 습관적 청소가 아니라 우발적 행동으로 시작된 것인데 돋보기 안경을 끼고 책을 읽다가 방 바닥에 쌓인 먼지와 티끌을 보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잘 보이지 않았거나 무심히 보았던 것들이 엄청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청소기를 밀고 다니는 평소의 청소와 달리 오늘은 돋보기를 끼고  손걸레로 구석 청소를 한다
좀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다
먼지와 티끌과 벌레와 거미줄과 같은 것들이 청소기의 강렬한 완력을 피해 기물들 아래나 뒷쪽의 구석진 곳에서 뒤엉켜 한 살림을 차려놓고 있다

놈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숨바꼭질처럼 숨어야 산다 들키면 죽는 기다
우리 세상은 장롱 아래나 냉장고 다리 밑 조그만 빈 틈이지

이 집 주인은 나이가 있어 밝은 눈을 갖지 못한 것과 게으른 것과 우둔한 청결 의식이 우리한테는 천만다행이지

하하
사람들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헛점이 다 있는 법이여
자기들의 시각을 맹신하거나 타성이나 습관에 갇히거나 하는 것이지
과학이니 문명이니 하며 잘난 척 하며 우리를 하찮은 존재로 생각하지
그러나 우리의 세계, 우리의 역사를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을 걸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이 세계를 공유하고 있지
아무리 우리를 배척하고 혐오해도 결코 우리를 추방할 수는 없는 법이지

그러거나말거나 나는 청소를 한다
구석진 곳들을 노출하기 위해 온갖 세간살이들이 제자리를 이탈하여 어수선하다
물걸레질에 포섭되고 체포되는 놈들의 비명이 요란하다

청소를 마치고 돋보기를 벗는다 돋보기로는 먼 산을 보기가 어렵기도 하거니와 때로는 일부러 게슴츠레한 눈으로 세상이나 사물을 보아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청소를 금방 마쳤는데도 굳이 현재형으로 기술하는 것은 어법에 맞지 않지만 현재를 영원의 시간으로 하고 싶은 의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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