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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장, 내 고향 거창

모리재에서



나는 지금 모리재에서 백세청풍루라는 현판을 보며 앉아있다 친구들과 함께 원족을 나온 것이다
오래오래 맑은 바람이 부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물리적 바람이 아니라 바람으로 상징한 선비의 충절과 기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선인들은 누각에도 일행의 시로 상징적 표현을 한다 짧은 글귀에 담은 비유와 상징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한 삶의 모범을 역사의 물줄기에 흘려보낸다
동계 정온 선생의 선비의 절개와 기상을 흠모하는 지역 유림들이 세운 화엽루다

모리라는 이름만으로도 망국의 신하의 처연한 심경이 절절히 드러난다
강동에 종가의 저택에서 은거하며 노년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첩첩산중에 와서 비둘기 둥지라는 뜻의 구소에서 고사리를 뜯는 집이라는 뜻의 채미헌이라며 참회와 보속으로 여생을 살았다

선생의 기질의 단면이  보인다 칼로 자해하려 했던 점, 영창대군 시해에 대해 상소를 올린 점, 모리로 은거한 것만 보아도 평소에 강하고 굽히지 않는 선비의 기개를 엿볼 수 있다

24세에 임진왜란이 발발해서 부친인 정유명과 스승인 석곡 성팽년, 송암 김면과 긴밀하게 협럭하며 대처했다는 기록을 접한다
선생이 살았던 시대는 임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수난과 고통의 역사였다
나는 가문의 선조인 정용의사로 말미암아 이런 역사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동계선생이 남이 아니다
공의 조모의 친정 조카인 농산의 정 용 의사가 의병으로 참전해 많은 전공을 세웠다
공의 외종숙인 정용의사는 50대 중반에 임진왜란 진주성 2차 교전에서 최경회 장군의 휘하에서 두 조카와 함께 최후까지 교전하다가 모두 전사한 것이다
외종숙의 장인은 무주 출신의 장필무 장군으로 북쪽 변방으오랑캐를 토벌한 명장이자 조선 중기의 청백리로 소문이 난 장수였다

강동에서 모리로 가는 산길을 가다보면 정용의사의 묘지를 지나치게 된다
진주성에서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의류 몇 점으로 가묘를 만든 것이다
참선비로 살다 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여 선무원종공신 2등급을 받은 분이다 

동계선생은 농산리 만월당을 지은 만월당 정종주 선조와 내외재종 간이다
만월당을 지을 무렵 동계선생이 제주도로 귀양을 갔을 때 사람을 보내어 만월당 기문을 써달라고 청해 그 기문이 지금도 걸려있다
이런 관계를 알고 역사를 대하니 지금 이 시대의 일인 것처럼 역사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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