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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밤을 주으며

아침 식전에 밤을 주우러 간다
내 소유는 아니지만 오래 전부터 줍던 관행으로 마치 주인 행세를 한다  작은 마을이라 이런 관행이 통하지만 다른 이가 와서 주우면 어쩔 도리가 없이 경쟁을 피한다

밤송이가 쩌억 벌어져 적갈색 알밤들 머리통이 두세 개 가지런하다
밤을 줍는 재미와 즐거움은 얻은 00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00물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땀흘려 가꾼 수확물도 아니고 적과의 싸움이나 경쟁으로 탈취한 노획물도 아니고 캐거나 자르는 채취물도 아니고 우연히 주운 습득물도 아닌지라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불명확함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것을 성서 용어인 만나로 표현했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나은 어휘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밤을 줍다보면 나는 새로운 것을 찾아 모험을 하는아이처럼 도전적인 발랄함과 용기가 솟아난다 찔레가시덤불 밑을 헤치기도 하고 나뭇가지나 풀섶에 은폐된 보물을 수색하는 첨병이 되기도 하고 자연이 보물놀이로 감춰놓은 보물을 찾아나선 한 소년 캐락터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참  이 일에 열중하다 보면 툭 스쳐가는 단상이 있다
그건 바로 아득한 원시의 체험이다 미분화된 소유의식으로 누구나 선점하면 정당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밤나무를 심고 가꾸는 합목적적인 계획은 없어도 되고, 대자연의 베품 앞에 욕망 주머니를 부풀릴 줄 몰랐던 소박함을 부러워 한다

밤을 줍다보면  밤송이나 알밤이 내 곁으로 툭 떨어지기도 하는 순간이.있다
이런 절묘한 인연에 피어나는 미소와 만족감으로 행복해진다

주워 담을 소쿠리가 없이 양쪽 호주머니가 불룩해지고 그걸로 모두 담지 못하면 윗도리  아랫자락에 담아 횡재를 자축하며 의기양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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