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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박순천 명창 흥보가 완창

형부 시간나면 놀러 오세요"라며 흥보전 완창 리플릿을 보낸 박순천 명창은 처의 외사촌 동생이다
몇 해 전 수궁가 완창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흥보전 완창이라니 문외한인 나로서도 소리꾼의 끝없는 공부와 수련에 매진하는 열정에 놀란다
요즘 90대 중반의 모친이 위급한 상태라 노심초사하며 공연 준비를 헀을 것이다

남원 시립도서관 내에 있는 지리산소극장은 100석 정도 될 것 같은  아담한 분위기가 정겹다  무대에 병풍을 두르고  돗자리를 깔고  반닫이 위에 국화 화병이 가을의 정취를 풍긴다 오늘의 사회자는 명창의 대학 친구인 김사은님인데 쌀패라는 동아리의 추억과 민주항쟁으로 피신하던 일이며 판소리에 입문하게 된 과정 등을 소개하며  돈독한 우정을 드러낸다

소설 흥보전을 판소리로 들을 수 있다니.......

그것도 국악의 본향이자 소설의 배경지가 인접한 곳이고 처족의 소리로 들을 수 있다니.......
이런 일들이 그저 우연은 아니리라

 

흥보전은 가난하지만 착한 심성을 가진 흥보가 결국은 복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놀보라는 상대가 있음으로 인해 존재의 특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되며 독자들에게 재미를 극대화한다
익살과 해학, 심한 과장법으로 양 캐릭터의 일상을 비교함으로써 권선징악을 계몽한다
소설을 판소리로 만든 소리꾼이 있었고 부단한 연마와 후계양성 과정이 있었기에 부단히 전승되어 가는 것이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의 앙상블이 절묘하다 김상열 고수는 박명창과 콤비를 이룬다
창자는 잠시 쉬는 시간에 물을 한 잔 권하며 완북을 맡은 일이 후회스러울 것이라며 고수에 대한 감사를 역설의 재치로 표한다
고수는 북과 추임새로 창자와 함께 호흡하며 극적 분위기를 고조 시킨다
일고수 이소리라는 표현은 고수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판소리는 무대와 객석이 함께 어울리는 놀이판이다
역시 소리의 고장답게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추임새와.격려조의 탄성들이 흥겹다

명창의 소리에는 오랜 수련으로 이룬 득음의 경지가 드러난다  맑고 고운 청음이아니라 온갖 세파를 극복하고 승화하는 잘 삭은 성음이다 판소리는 어떤 장르보다 성대를 긴장하며 소리를 질러대는 연습으로 성대에 염증이 생기고 회복되는 중에 성대 조직에  결절이나 변형이 생겨 쉰듯 삭은듯 구수한 소리를 얻게 되는 혹독한 과정의 결실이다
소리꾼에게는 계보가 중요하다 음악학교와 같은 체계적 시스템이 아니라 스승의 가르침을 대면수업으로 학습하고 꾸준히 수련하는 전근대적 방식이기에 스승의 맥을 전수하여 주체적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박명창은 남원에서 강도근 명창으로부터 흥보가,심펑가.춘향가,적벽가,수궁가를 전수받고
이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5호인 남해성  선생을 사사하고 있다
이런 전수과정에 <더늠>이라 일컫는 창작 행위가 있다 기존의 창법에서 벗어나 창자의 독특한 표현이 이루어진다 전통에 대한 고루한 답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이 허용되며 장려되기도 한다니 놀랍다
나는 판소리에 대한 식견이 일천하여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나 문화의 계승과 창조적 발전에 관한 일반론에 한가닥 생각이 미친다

발표회가 끝나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뒷풀이가 정겹다 모처럼 처외사촌 가족들과 안부를 물으며 추억들을 소환하며 피붙이들의 끈끈한 유대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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