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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소나무의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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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한 그루가 이주를 한다
산자락 끝, 이 바닥에서 왕초 노릇을 하며 가솔들을 거느린 족장이다

우람한 덩치를 탐낸 사람들에 의한 강제 이주다
햇빛이 잘 드는 광장에서 호사를 누린다며 꼬드기는 사람들이지만 정작 소나무는 수심이 가득한 여러 날이 지나고 대형 크레인이 팔뚝에 검붉은 힘줄을 불끈 거리며 힘을 쓰는 굉음이 요란하다

오랜 세월을 이 산자락 끝에 정착하느라 지하로 넓게 개척한 뿌리들이 잘리며 새 정착을 위한 희생을 받아들이라고 위로한다
생존할 수 있을만큼만 남겨진 뿌리가 흙을 감싼 채 사방으로 동그랗게 천으로 감싸고 있다

제 스스로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붙박이들은 한 번 뿌리내린 곳이 제 무덤이라며 이주라는 말은 들어본 작이 없단다
아직 누구에게도, 심지어 제 몸의 상반신에게도 가려졌던 하반신을 가려 지상의 빛을 차단하고 남근 같은 자존심을 가리고 품고있는 흙더미를 놓지 않는다

제 생명의 에너지를 주던 한 아름의 흙을 떠나서는 생존이 불가함을 알기 때문이다

나무가 혼절한다 뿌리가 노출되어 지상과 지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꼿꼿이 서 있어 창공을 향하던 것이 드러누우니 정체성을 잃고 극도의 혼란으로 이동의 멀미에 정신을 잃고 신음을 토한다

이런 것이 이동이로구나  청솔잎 안색이파리하고 초췌한 채 크레인에 매달려 난생 첫 여행을 한다
이.별난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흥미로운듯 자켜본다 거구의 나무가 몸을 회전하며 천천히 움직이는 동작은 서커스의 곡예와 다를 바 없다
제 키의 너댓 걸음 밖에 안되는 자리로 이동하는데 반나절이 족히 걸린다
타고 갈 긴 트럭과 전봇줄을 치켜올려 줄  크레인과  땅을 파고 갈무리하는 포크레인이 소나무 족장을 위해  지극정성을 바친다
마침내 뿌리가 구덩이에 내려지고 나무가 바르게 서서 허리를 편다 창공의 구름들이 격려를 하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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