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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명절이 다가오고

명절은 결핍의 축제라는 것을 이제서야 확실히 깨닫는다
어린 시절에는 까망 운동화, 멋스런 옷, 푸짐하고 기름진음식들을 갈망했었고 일년에 두어 차례의 명절에  충족되었다
그런 명절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찌나 간절했는지 다가올 명절을 손꼽아가며 기다렸다 시골 5일장이라 규모야 뻔하지만 당시로서는 대목장이 붐비며 진열되는 많은 상품들이 빈곤에 일상화된 우리에게는 신기하고 흥분되는 일시적인 빈곤 속의 풍요였다
흥분은 냄새와 함께 다가왔다
운동화에서 풍기는 공업용 고무 냄새에 코를 파묻었다
그리고 다시 장롱 안에 넣어두며 욕망 충족을 며칠 후로 유보하였다 모처럼 얻은 행복을 즉각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명절은 숭고하기까지 하였다
명절의 축제를 위한 희생양은 늘 돼지였다 예전에는 요즘처럼 시장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없어 마을 주민들이 직접 도축해서 비용을 부담하고 소비하였다
명절  전에는 어디선가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것은 축제를 알리는 팡파르 같은 것이었다 가마솥이 걸리고 내장을 푹 삶아내며 도축에 참여한 이들에게 술 몇 잔의 안주가 되고 아이들에게는 오줌보를  내어주며 축구공으로 사용하도록 했었다
선친은 내 이름을 크게 불러 볏짚 몇 올로 동여맨 돼지고기 서너근을 손에 쥐어주었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뿌듯함을, 나는 살코기의 식도락을 누릴 수 있었다

이제는 명절이 되어도 기다려지기는커녕  무덤덤할 뿐이다
가족을 기다리지도 않으며 풍성한 음식이나 선물 등을 바라지도 않는다

예전의 명절이 지금은 피할 수 없는 고역이 되었다
다만 돌아가신 부모님을 추모하는 일이 가장 뜻 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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