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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단풍나무를 자르고

잘린 단풍나무

창문 앞에 심었던 단풍나무를 자르기로 한 것은 앞산을 조망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다
내가 심고 내가 잘랐으니 변덕이요 무자비의 부덕이다
심을 땐 언제고 필요에 따라 잘라버리는 이 존재의 가벼움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굳이 변명을 늘어 놓는다면 나무가 크고 무성해져 시야를 가린다는 점과 옮기려니 너무 힘든다는 점이다
잘린 밑둥치가 나를 노려보며 원 망을 하는듯 하다

주돈이가 집안의 잡초를 방치해 연유를 물었더니 "내 뜻과 같기 때문이다"고 한 고사가 떠오른다
그 말을 화두로 삼았던 정호는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면 그것은 불인(不仁)이라는 의서의 귀절을 발견하고 깨우침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돈이는 잡초까지도 자기 몸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여 차마 자를 수 없었던 성인의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어진 사람은 타인이나  타자(동물, 나무 등의 사물 일반)까지도 자기 몸으로 인식하는 인문적 감수성을 지닌다 감수성은 이성의 작용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이다 나 자신의 일로 여기고, 마음 아파하고, 동정하고, 눈물 흘리고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움인 것이다 고성능의 AI가 가질 수 없는 인간에게 부여한 신의 선물인 것이다

떨어진 동백꽃을 차마 밟을 수 없어 뒤뚱 걸음을 내닫듯
굶주린 길고양이에게  자비의 미소로 먹이 한 줌을 놓아주듯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연약하여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들이 있다 그들을 나와 한 몸으로 생각하여 보호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럴 대 일체만물의 덕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이렇게 미숙하고 폭력적이다
인자의 길, 도의 길은 요원하다 서산에 해는 기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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