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꿈이 생겼어요"…美이민가정 자녀 희망 키운 韓대학생들
입력2024.07.30. 오전 5:00
수정2024.07.30. 오전 5:01
기사원문
박소영 기자
“아이 해브 어 드림 어 송 투 싱(I have a dream a song to sing·나는 노래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미국 메사추세츠주 브록턴시의 한 중학교 강당에서 지난 25일(현지시간) 고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난해 에콰도르에서 미국에 이민 온 모니카 두탄 카스트로(12)를 비롯한 5명의 학생들이 ‘이민 학생 여름 캠프’ 마무리 공연에서 팝그룹 아바(ABBA)의 인기곡 ‘아이 해브 어 드림’을 열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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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에 놓인 미국 이민자 가정 학생들이 2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록턴의 한 중학교에서 열린 여름 캠프 마무리 공연에서 월드비전 자원봉사자들과 '아이 해브 어 드림'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사진 월드비전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자녀를 바라보던 100여명의 이민자 가족들은 갖은 고초 끝에 미국 땅을 밟던 순간을 떠올리는 듯 회한에 잠긴 표정이었다. 노래를 마친 모니카에게 소감을 묻자 “이 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운 게 뭔지 알게 됐고,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고 답하면서 밝게 웃었다.
한국인 대학생 자원봉사자 이하원(22·아주대3)양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이 캠프에서 뮤지컬 활동을 맡아 이민자 가정 아이들을 가르쳤던 그는 “모니카가 처음엔 많이 위축된 모습이었는데, 한 달 동안 옆에서 보살피니 점점 웃음이 많아지고 밝아졌다”면서 “이렇게 당당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고 전했다.
한국월드비전은 올해 처음 미국 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민자 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열린 브록턴의 한달 여름 캠프에 한국 대학생들을 교사로 참여시켰다. 한국인 학생들은 성장기나 학창 시절 월드비전의 후원을 통해 꿈을 키웠던 이들이다. 브록턴의 여름 캠프는 보스턴 지역 내 한인이 결성한 NGO단체 EDR(Education Divide Reform)이 지난 2020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가정 형편으로 학습 기회가 적은 이민자 가정 아이들 150여명에게 영어·수학·과학 등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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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봉사자들이 지난 4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록턴의 한 중학교에서 K팝 아이돌 '뉴진스' 노래 '수퍼샤이'에 맞춰 이민자 가정 학생들에게 춤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 월드비전
올해 캠프는 한국월드비전이 선발한 대학생 11명이 교사로 참여하면서 교육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해졌다. K팝 댄스·뮤지컬·미술 등을 처음 개설해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서아프리카 카보베르데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리아나 보르즈(10)는 “유튜브로만 보던 K팝 댄스를 직접 배우게 됐다”며 좋아했다. 조고은 EDR 프로그램 디렉터는 “아이들이 캠프에 신청하고도 안 오거나 학교에 와도 몰래 화장실 창문으로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국월드비전 봉사자들 수업이 워낙 재미있어서 출석률이 껑충 올랐다”고 전했다.
K팝 댄스반을 맡은 김수환(19·연성대1)군은 “나도 어려운 집안 환경으로 힘든 학창시절을 보내서 도움이 되고 싶어 지원했다”면서 “중학생인데도 곱셈·나눗셈도 못 하고 소극적인 아이들이 안타까워 열심히 가르쳤는데 나중에는 ‘선생님, 감사해요’라고 말해주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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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대학생 자원봉사자 이하선(오른쪽)양이 지난 9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록턴의 한 중학교에서 이민자 가정 아이에게 미술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월드비전
이번 캠프가 열린 브록턴은 보스턴에서 남쪽으로 약 40㎞ 떨어진, 인구 10만명의 소도시다. 이곳은 이민자가 30%가 넘는다. 외국인 10만여명이 사는 한국의 안산시(인구 70만명)와 비슷하다. 브록턴은 대부분 카보베르데,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 등에서 넘어온 난민이 많다. 지난해엔 대선후보 피살 등 치안 상태가 극도로 악화한 에콰도르 등 남미 지역에서 대거 넘어왔다. 부모들은 주로 공사장 인부나 식당·호텔 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엔 이마저도 하지 못하면서 빈곤율이 심각해졌다. 이런 상황인지라 어린아이들의 학습권과 꿈은 사치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한국월드비전은 이번 자원봉사단을 ‘꿈꾸는 아이들’ 사업에 참여해 진로를 정하고 나아가고 있는 대학생으로 꾸렸다. 꿈꾸는 아이들 사업은 가난으로 꿈 없이 사는 아이들에게 자아 탐색과 다양한 진로 멘토링을 제공해 꿈을 키우게 하는 사업으로 지난 2013년 시작됐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장기적으로 맞춤형 지원을 하면서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한다. 올해는 처음으로 미국을 찾아 힘든 환경에 처한 세계 아이들 꿈을 지원하는 ‘비욘드 드림즈(beyond dreams·꿈 너머)’라는 글로벌 나눔 리더십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진이진 한국월드비전 꿈성장 지원팀장은 “꿈꾸는 아이들 사업엔 연간 약 8000명이 참여해 꿈을 이뤄가고 있다”면서 “이번 여름 캠프에서 한국월드비전 후원을 받은 학생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의 이민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펼쳤다”고 전했다. 이날 공연을 지켜본 김재휘 주보스턴한국총영사는 “어려운 환경에 놓인 이민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미국에 온 월드비전 학생들이 진정한 외교관”이라면서 “이곳의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시 관계자들에게 큰 울림이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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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후원을 받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2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록턴의 한 중학교에서 어려운 환경에 놓인 이민자 가정 학생들을 위한 한달간의 교육 활동에 참여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월드비전
지난 2016년부터 8년간 꿈꾸는 아이들 사업에 참여한 이하선(24·이화여대4)양은 이번 캠프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의자에도 제대로 앉지 않고 산만했지만, 재미있는 그림을 그려주고 꾸준히 대화를 시도하면서 단란한 수업을 만들었다. 그는 “집이 가난해서 미술 공부는 엄두도 못냈는데 월드비전의 장기후원을 받고 미술학도가 됐다”면서 “이민자 가정 아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이야기해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전했다.
4년째 이민 학생 여름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 봉사자 안나 베르헤는 “올해 한국 봉사자들이 오면서 학습을 멀리하던 아이들에게 큰 동기부여 됐다”며 “이런 활동이 더 자주 지속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진이진 팀장은 “앞으로도 꿈 성장 지원을 받은 월드비전 후원 학생들이 미국 등 세계 곳곳의 어려운 아이들을 찾아가 꿈 지원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브록턴(미국)=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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