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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시냇가에서

 

시냇가에 앉아서 물보라를 튀기며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덕유산 어디쯤서 시작한 물줄기가 흐르는 이곳은

위천 상류인지라 부산하고 원기가 넘친다.

 

강은 젊은이처럼 길을 재촉한다. 

시내나 강들도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고 죽는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래도록 물가에서 사유하면서부터였다.

 

 

 발원지에서 강은 태어난다.

높고 깊은 계곡의 바위 틈에서

여리고 미약한 물기운이 솟아나며 胎動하였으리.

아직 기운이 약해서 소리마저 내지 못하던 물줄기가

얼마를 흘러서였을까?

 

 

이 골 저 골에서 모인 물방울들이

서로 모여 한 몸을 이루며 가느다란 새소리처럼 흐르기 시작한 것은......

실개천에서는 아장아장 걸음의 아기가 웅얼거리는 것처럼,

급한 계곡에서는 치열한 청년처럼 넘치는 기세와 포효하는 함성이 되고,

광활한 하류나 바다에서는 장년이나 노년의 깊어진 원숙함으로

강도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음으로 승화하는 것이리라.



 

 

별체로서의 물이 서로 합쳐져서 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은

물이 지닌 근본적인 속성 때문이다.

낮은 곳을 향함이다.

낮은 곳으로 흐르기 위해

물은 가장 유연한 몸의 구조를 가진다.

 

자기만의 정형화된 형체를 갖지 않고

주변 사물의 구조에 맞게 자유자재로 전환한다.

 

물론 물이 액체로서의 형태만을 갖춘 것은 아니고

때로는 고체나 기체와 같은 형태로 전환하기도 한다.

 한 겨울에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고 추위가 엄습하면

물은 그 활동을 정지하고 휴식에 들어간다.

 

 

 

 

아! 자연의 리듬이란........

그 왕성한 활동, 넘치는 정열을 멈추고

굳은 몸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내적 자기 沈潛에 든다.

 

그래서 겨울의 강은 동굴 속의 面壁 선사가 아니던가.

마치 스님들처럼 겨울이 되면 冬安居에 들어간다.

뜨거운 기운이 대지를 달구는 여름철에

물은 기화의 변신을 하니 참으로 묘한 일이다.

 

태양의 열을 받아 수증기가 되어 깃

털보다 가벼운 몸으로 승천하다니.

승천한 증기는 다시 인연의 기운으로 흩어지고 모여서

구름을 이루고 구름은 다시 지상으로 뿌려지니

온 세상 만물은 流轉함이 아니던가?

 

 

 

물은 생명의 원천이요,

만물을 양생하는 젖줄이려니

물가에 앉은 나는 물을 찬미한다.

 

천상에서 구름이 맺히고 풀려서

비가 내리니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고

천지간의 만물이 목을 적시고 성장하지 않는가?

 

흐르는 시냇물은

스스로 대자연을 찬미하며 노래 부르니

내 어찌 방관자처럼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내 마음은 고양되고 기쁨에 넘치나니

춤을 추어라.

노래 불러라.

대자연을 찬미하여라.

은혜로다.

축복이로다

이 몸을 부드럽게 하고

 이 몸에 뜨거운 피가 흐르게 되었구나.

 

 

 

 

물가를 서성이거나 앉아서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새 나는 배움과 깨달음의 지혜를 얻게 된다.

자연처럼 위대한 스승이 어디 있으리오.

 

성현들은 知者樂水라고 하였으니

 대자연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그

렇게 자주 강변에서 서성거린 것인지.....

흐르는 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조금씩 다가가는 현자의 지혜와 깨달음.

 

 

 

 

물은 만물을 포용한다.

 汚濁이니 貴賤을 가리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니

그 덕은 천하를 덮고도 남음이로구나.

혼탁하고 이해관계가 살벌한 세상에서

걸리고 넘어지는 우리의 영혼을 정화 시킨다네

 

 

 

 

 

저 유연함과 자유분방함이란..........

큰 바위를 만나서 다투지 않고

감싸듯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서로간에 화평을 이룬다

 

낮은 곳을 향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낮추며 엎드리며

순명을 한다.

 

 

그래서 물길이 닿는 곳에서는

어떤 분란도 갈등도 없이

화평을 이룸이로구나.

 

최상의 덕이로다.

래서 성현들은 上善若水라고 하였구나.

 

 

 

낮은 곳으로 임하기 위해

마굿간에서 태어나 십자가의 길을 걸었던 크리스트,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팔정도를 가르친 싯다르타

 

성인들은 하나의 강이로다

큰 강이 되어 인류와 함께 흐르고 계시는도다.

 

나는 일상에서 어떻게 흘러야 할 것인가를 곰곰 생각한다.

 

 

 

 

흐르는 시내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노라면

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물은 마치 성지를 찾아나선 순례자다.

우주 만물의 이법을 찬미 찬양하는

치열한 구도의  길에 들어선 순례자다.

 

 

티벳의 황량한 길에서

五體投地를 하며

고행의 길에서

참된 희열을 체험하는 순례자처럼.....

聖地를 향한 물의 순례길은

 자유자재의 길이다.

 

일정한 형체도 없이 가고 싶은대로,

노래하고 싶은대로 흘러도

법에 거스림이 없으니 도란 지극하다.

 

 

지난 겨울에 냇가는 얼어 붙었었다.

긴 여행을 잠시 쉬었다.

 

凝固는 정지된 상태이다.

겨울에 물은 잠시 응고되지만

봄이 되면 다시 풀리고 흐르게 된다.

운동하는 것은 멈추려고 한다.

정지하면 편안해진다.

 

 

육신은 죽으면

기의 순환이 멈추고

모든 것이 정지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이란 것도

일시적이다.

겨울에 얼은 얼음이 봄에 풀리듯

우주 만물은 순환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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