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곡의 글방

이발소와 미용실

오늘은 읍에 나가서 미용실에서 컷트를 한다
예전에는 남자가 가는 이발소(이용원)와 여자 전용의 미장원(미용실)이 구별되었는데 요즘은 선택의 자유로 구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다만 여성들이 이발소를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발소와 미용실의 차이가 여럿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머리를 감을 때 고개를 앞으로 숙이는 이발소와 뒤로 젖히는 미용실의 차이가 정반대라 재미있다

예전의 이발사들은 나이도 지긋하고 경험이 많은 분들이었는데 요즘처럼 손님의 요구조건을 일일이 들어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때로는 엄한 구석도 있었다
머리를 감을 때 이발소의 고객은 스스로 머리를 숙여야 했고 때론 이발사가 머리를 누르기도 했다 이발사가 상위 포지션의 우월적인 지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머리를 감기 직전 면도를 할 때부터 이미 이발사의 주도권에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꼼짝달싹 못하게 눕혀지고 눈마저 감은 채 이발사의 손에 들린 길고 예리한 면도칼은 생살여탈권을 위임하는 불길한 상상까지 하는 수도 있지 않은가?

예전 초등학교 촌극 무대에서 이발사 아버지가 최고라며 어깨를 으쓱거리던 한 친구의 멘트가 연상된다
대통령도 우리 아버지 앞에서는 모자를 벗고 꼼짝달싹도 못하니 우리 아버지가 최고란 말이여!
라는 익살에 모두들 함박 웃음과 박수로 호응했었다

오늘 미용실의 여자 미용사는 면도칼을 들지도 않고 샴푸를 하자며  머리 밭침대에서 뒤로 머리를 젖히고 부드러운 감촉으로 머리를 감기는데 목덜미로 약간 흐르는 물은 목을 들어 훔쳐내는 솜씨가 익숙하다
바로 위에서 미용사의 눈과 마주치는 어색함을 가리려고 눈가리개를 대준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즐거운 고민을 해보기도 한다

'청곡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이 든다는 것 - 즉자와 대자  (0) 2025.01.02
원단의 시간 사유  (1) 2025.01.01
아웃 사이더들의 노래  (2) 2024.12.19
잡담에 대하여  (0) 2024.12.16
타제 석기 한 개  (1) 2024.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