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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잡담에 대하여

그들 중의 누군가가 말을 건다
듣는 이가 또 응답을 하며  말판이 벌어진다
판에는 자연스럽게 중심이 형성된다 자성이 강한 중심부에 다닥다닥 붙는 쇳가루처럼.....
말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난잡하게 교미하고  합종연횡한다
계획도, 목적 의식도 질서도 없이 판을 이루다가 금방 깨지고 만다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 방식이다

스몰 토크는 가벼운 일상의 파편 같은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저마다의 경험한 것들, 어디선가 들은 것들, 확실하지 않은 소문들이 뒤엉켜 있다
퍼뜨려 말하기와 뒤따라 말하기가 잡담의 구성 방식이다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번뜩이는 눈으로 귀를 쫑긋 세우며 이야기에 동참한다
판에 오른 화제의 본래의 맥락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고 대화의 동력을 상실하고 만다
여기서는 참여자들에게 평균적으로 이해되는 수준이 가장 잘 유통된다
사실이나 진리 여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쓸데없이 진지한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포식자들이 잠복하고 있는 초원을 횡단하는 누우떼처럼 사람들은 중심부에서 격리되지 않으려고 둥그렇게 모인다
간혹 일부는 중심에 무관심하듯 일정한 거리 밖에 서 있다 그들은 아웃 사이더들이다 좌중의 화제에 흥미를 잃거나 필요를 못 느끼는 이들은 무리에서 겉돌거나 일정한 이격 거리를 유지하는데 소수에 그친다

이 판의 중심부로 몰려드는 이들의 무의식에는 염려와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인 인간의 원초적인 염려와 불안으로 본연의 자기와 맞닥뜨리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자신의 정체에 다가설 수 없는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대체 대상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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