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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너는 어느 쪽이냐는 황당한 말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김훈의 에세이를 몇 번 감동적으로 읽은 적이 있다
요즘의 갈등과 혼란으로 나라가 두 쪽이 나는 현재의 시국에 노작가의 <개수작을 그만 두라>는 글이 나를 위로한다

나는 본래 시국과 관련된 정치적 언어를 입에 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욕망을 정의라고 말하는 그 말들은 허망할수록 격렬하고, 무내용하고, 진지하고, 기만적이다(p83)

20여 년 전에도 정치 언어들이 무장을 하고 백병전을 치러던 상황을 지옥이라며 작가의 양심이 몸서리를 친다 이 본질을 권력 투쟁이라고 믿는다 이 논리는 요즘에도 유효하고 차후에도 어쩌면 영구히 그럴 것이다
오로지 권력을 잡기 위해 이전투구하며 요설들을 풀어내며 무지한 유권자들을 현혹한다

이 나라의 모든 사태는 권력 투쟁 아닌 것이 없다 지역간의 갈등과 대립도 권력 투쟁이고.......색깔론과 역색깔론이 모두 권력 투쟁이고........의약 분업도 권력 투쟁이고 통일조차도 권력 투쟁의 제물이 되어간다 권력만이 이 지옥의 헌법인 것이다 여당과 야당의 싸움은 말할 것도 없고.......진보라는 신문과 보수라는 신문이...... 다 말짱 권력 투쟁인 것이다
권력에 환장하고 권력에 눈이 뒤집힌 자들이 모두들 권력을 향한 기갈을 깊이 감추고 자유와 정의의 깃발을 흔들며 온 나라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p84)

김훈 선생의 치를 떨게 했던 당시의 상황보다 작금의 상황은 심리적 내전의 상태로 심각하다
사람들은 소위 진보니 보수니 하는 진영의 포로가 되어 제 이성적 판단 능력을 잃고 진영의 꼭두각시처럼 끌려다닌다

김훈 선생은 어느 편에 속하는지를 밝히라는 말에 경악했다 당시는 언론의 자유와 조세의 정의라는 가치의 대립 상태에 있었다 여기서 이 쪽이냐 저 쪽이냐를 선택하라는 논리를 경멸하고 있다 그래도 작금에 비하면 당시의 상황은 논쟁할만한 하지 않은가?
김훈 선생도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며 얼마나 더 경악하고 분노하고 절망하겠는가?
당시와는 분열과 갈등의 질과 양이 엄청난 차이가 있다
Sns와 스마트폰이 제공하고 확산 시키는 정치적 컨텐츠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진영 대립이 격화되었다
갈수록 이념적 대립이 극단화되어가고 투쟁수단도 극렬화되어간다
정부 수립 이후 요즘처럼 치열하게 진영간의 시위가 극렬한 적이 없다
탄핵이 일상화되어 무감각해진다 정부의 기관들끼리 충돌이 예삿 일이 되어 있다

고결한 백조가 되고 싶어 이 진절머리 나는 지옥을 피하고 싶어 클라식 음악이나 책 속에 묻히기도 하지만 이 나라의 엄연한 현실이 걱정되어 아수라장을 맴돌며 밤 잠을 잊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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