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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목공방 - 나무둥치

칼을 갈면서

 

 

온 종일 몇 개의 칼들을 간다.

칼을 갈다보면 삼매에 잠긴다.

 

 

아이러니하다.

지극한 날카로움을 얻기 위해

숫돌과 쇠붙이라는 강한 두 대상의 부드러운 마찰이 필요하다니.

 

 

직선 운동이란 단순한 행위의 수없는 반복이

고도의 집중에서 이루어지며

둔탁하던 면이 예리한 날을 갖는다.

 

 

바람직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몰입과 인내와 자기 절제가 필요한 과정상의 수련은

마치 인격 도야의 과정과 비슷하지 않은가?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란 격언처럼

칼을 가는 과정에는 자기몰입이나 집중을 필요로 한다.

온갖 잡념을 떨쳐내고 예리함을 조금씩 얻어가는 과정에서

마치 선수행의 과정에서 누리는 고뇌와 희열을 체험하는 것이 아닐까.

 

 

 

칼을 연마하는 일은 행위의 결과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리함은 선이다'

결과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없는 그 성과를

스스로 향유하는 즐거움은 그 보상이다.

 

 

 

 

 

처음 목공예를 배울 때 수암선생께서

칼을 가는 과업을 주었던 일이 생각난다.

몇 시간을 갈아도 갈아도.....

아무리 날을 세워 햇빛에 반사되는지 비추어 보고,

날에 손을 얹어 보아도

아직 멀었다면서 아직 멀었다면서 매정하게 대하던 일이.......

 

 

 

오늘 종일 숫돌에 칼을 마칠 시키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칼을 갈면서 인내하고, 자신을 가다듬고, 정신을 몰입하라고

그리고 칼을 가는 일 그 자체가 즐거움이고 행복한 일이란 것을

수암선생께서 행동으로 가르친 것인지.

 

 

목공에서는 대패나 자귀나 조각도, 톱과 같은 쇠붙이 도구들을

스스로 연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연마 과정은 단순히 수단적 가치로만 생각하여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 하는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자기를 수양하며 도에 이르기 위한

수련의 예비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이 얼마나 좋은 생각이며 즐거운 일인가?

스스로에게 바람직한 암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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