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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가을에 사유하는 金

 

 

뜰에 나선다.

열기를 눅잦힌 따사로운 가을볕이 고르게 퍼진다.

잔디들은 쇠잔한 몸으로 볕을 쬐기 위해 땅에 드러눕는다.

 

 

 

 

 

햇볕을 쟁탈하기 위해

그늘진 돌팍 사이, 흙 몇 줌, 그 좁은 땅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며 웃자란 여러 풀들이 뒤엉켜 있다.

이제 뜨거운 맥박도 고단한 한숨도 내려 놓는다.

 

 

 

 

 

 

 

뜰을 거니는 한 사내의 어깻죽지가 처지고 빈다.

어젯밤 풀벌레 소리에 젖던 정수리가 여전히 눅눅하다.

어느새 그에게서 마른 갈잎 몇 잎들이 구르며, 부서지며 스걱댄다.

 

 

   

 

 

 

이 뜰은 五行을 사유하는 샘이요, 現象의 종합이다.

이 계절은 바야흐로 쇠의 계절로 접어든다.

저 마르는 풀들은 이제 누울 자리를 준비한다.

화려했던 영화에  미련을 버리고

초라해져 가는 자신을 추스리며 꿋꿋하다.

 

 

 

 

 

 

한 여름 그 盛하던 기운이 衰한다.

이제 熱火 같은 부지런함으로 이루던

성장, 번성, 蓄財도 한낱 꿈으로 여기며

肅殺之氣의 냉엄함에 順命하는 수목들이다.

 

 

 

 

 

 

이 대자연의 리듬을 느껴보라.

한 막을 내리고 다음 막으로 이어가는 리듬을.......

열정, 열화는 식어야 하리.

삼라만상에 성하던 기운을 꺾는 차가운 쇠의 강건함을 느낀다.

 

동녘 하늘에 찬란히 떠오르던 태양처럼

산천초목에 싹을 내밀던 木의 기운이 저문다.

저 서산으로 지는 태양처럼 풀이 시들고 나무가 잎들을 떨군다.

그래서 이 가을은 서녘으로 기우는 계절이다.

 

 

 

 

 

이제 木을 剋하는 쇠는 차갑고 단단한 명검이라.

가을 하늘에는 달빛에 번뜩이는 차가운 검의 빛이 보인다.

아! 어찌 剋을 탓하리.

생은 필연 죽음으로, 죽음은 새로운 생으로 가는 과정인 것을....

생을 잉태하는 죽음은 허무하지 않고 장엄하다.

풀벌레들의 심포니는 나고 죽음을 초극하는 싯타르타의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