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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일사 구재무 선생의 화첩에서 누리는 가을의 서정

 

경주 안강의 들판을 걷는다.

알알이 영글어 가는 벼 이삭을 깨물고 요리조리 굴려가며

                                                            껍질을 깐 낱알이 단단하다.

메뚜기가 사방으로 튀며 만찬을 방해하는 침입자를 경계한다.

 

가을의 서정을 만끽하려고 화첩을 펼친다.

一史 具滋武 선생은 문인화의 법통과 正道를 경유한 원로다.

강직하고 분별이 분명한 성품에 불굴의 의지로 병고를 극복하고

열정적인 창작으로 완숙과 세속을 초탈한 경지에 있는 분이라 들었다.

 

방아깨비 한 마리가 풍요로운 가을을 찬미한다.

살진 붉은 배는 풍요로움의 상징이요

길고 튼튼한 다리는 자유의 상징이로구나.

넓고 기름진 이 계절에 감사하고 찬미하리니

 

방아깨비의 노래를 듣는다.

천지사방 신천지에 백화만초 피어나니

내 발길 한걸음마다 기억하리라

풍성한 이 은혜 태산보다 높도다.

 

 

 

 

疎影樓前庭卽景 老史試病腕

소영루 앞뜰의 경치 노사 아픈 팔을 시험하다

(한지에 수묵담채 2010)

 

 

 

 

실솔(蟋蟀) 隱士들이 가을의 흥에 겨워 

뜰을 한가로이 배회하는구나.

제 몸이 악기가 되어 청아한 소리가 되려

바위틈이나 낙엽더미에에 숨어

가을을 찬미하는 악사의 본분도 잊은 것인지..

 

 

아! 바람결에 언뜻 스쳐가는 自由自在로운 생각에 잠긴다.

이 가을의 정취에 취한 그대나 나나

우리가 種의 건너편에서 他者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이 가을정취에 초대받은 客이 아니던가?

이 흥에 취하면 이런저런 분별이나 차별은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 아닌가?

 

 

대체 어떤 성대를 지니고 태어났는가?

옥구슬 열두개를 성대에 두르고

굴리는듯 휘감아돌리는듯 목구비 돌아가며

빛깔마저 청아하여 무지개 두른듯 하구나.

새벽 이슬 찬 서리에 가다듬었는가. 

천상의 무슨 사연 이리도 애절한고.

 

필시 천상 제일의 악사가 무슨 불경한 소행으로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받았으나 그 소리를 귀하게 여겨

이 지상으로 귀양 온 것이로다.

나는 다만 그대의 청아한 소리를 감탄하여 마지 않으니

언제나 변함없는 소리를 들려주오.

 

 

落葉蕭蕭間 (낙엽의 쓸쓸한 사이를)

蟋蟀趄徘徊 (귀뚜라미는 요리조리 맴도네)

(수묵담채화,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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