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엔 국화 몇 송이의 향기 피어난다네.
지금 여기엔 낙엽들 바스락 거리는 소리 정겹다네.
지금 여기엔 청량한 만추의 바람이 휙 스쳐간다네.
국화 몇 송이는 내 소유물이 아니라네.
나는 단지 그 꽃과 향기와 기품을 사랑할 뿐이라네.
한 촉에 집 한 채 값이라는 난초를 사랑하지 않는다네.
지난 세월에 축적한 것들은 부질없는 일인 것을......
몇 채의 주택, 몇개의 통장, 명함에 적힌 깨알 같은 이력들, 자식들에 대한 기대,
변변찮은 머리에 든 지식들, 온갖 잡다한 기억들을
쭉정이 가려내려 세찬 바람결에 키질하듯
저 바람결에 미련없이 흩날려야 하리.
이제 새 바람 앞에 서야 하리.
어제의 바람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바람 앞에서 나는 새로워지리.
소유의 양식에서 존재의 양식으로 전환하는 것
언뜻 떠오르는 누군가의 넋두리.
10년 후의 내 삶이 지금과 다르다면 고작 아파트 평수가 몇 평 넓어지는
그것 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에 홀연히 다가오는 깨우침으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으로 전원생활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나섰다는
은자의 영웅담을 들었네.
참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here & now)에서 누리는 삶의 기쁨인 것.
화가들이여. 캔버스와 물감과 씨름하라.
조각가들이여. 나무와 끌과 씨름하라.
창조적 행위에서 누리는 기쁨 같은 이런 삶의 양식은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에 지배받지 않는 것.
사랑하고 기뻐하고, 진리에 눈 뜨는 이런 경험은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생생한 것, 시간을 초월하는 것.
지금 여기서
지금 여기서
지금 그리고 여기는 영원인 것을......
팝송의 한 구절처럼 (Now & ever)
과거를 소유하는 양식에서는 과거는 죽어 있는 것.
죽은 과거를 지금 이 순간으로 전환하려면
존재하는 삶의 양식으로 바뀌어 지는 것
우리는 과거에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으려니....
과거의 상황이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것처럼 신선함으로 경험할 수 있다.
과거는 재창조되며 생명을 주입할 수 있는 것.
그렇게 되면 과거는 이미 죽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
자식을 잃은 부모가 참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할 때 쓰라린 고통은 치유되고
죽은 자식은 새로운 형태로 살아나는 것.
아아! 우리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부딪히는 것을....
우리는 육체를 지닌 존재이기에, 우리는 언젠가는 죽어야 할 존재이기에
시간을 무시할 수도, 시간에서 해방될 수 없는 것이기에
시간을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삶은 시간을 존중하지만 결코 시간에 굴복 당하지 않는 것
소유 양식에서는 시간에 굴복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
생각해 보라.
인간의 삶을 소유지향으로 전환시킨 산업사회에서는
시간이 최고의 지배자가 되었다.
기계에 의해서 시간이 인간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것이다.
직업생활을 하는 이들의 꽉 짜여진 일정은 마치 컨베이어벨트처럼 돌아가고
그 앞에 선 사람은 기계의 노예처럼 전락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내 인생의 시간이거늘
즐겨라. 기뻐하라.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려니
즐겨라 기뻐하라.